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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12. 2016

타임캡슐에는 소중한 걸 넣으세요

1994년는 서울시가 도읍으로 정해진지 600년이 되는 해였고, 한국은 이를 기념하여 남산골 한옥마을에 타임캡슐을 매설했다. '서울 1000년 타임캡슐'이라고 명명된 이 타임캡슐은 보신각 종을 본딴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시민 공모를 통해서 현대 생활과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물품 600점을 선정하여 보존했다. 


600점. 많은 것 같지만 매년 나오는 베스트셀러와 음반, 영화 등 콘텐츠만 생각해보더라도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다. 거기에 유행하던 옷, 음식, 생활품 등등을 세어 보면 600점은 무슨 1000점도 모자랄 판이다. 당연히 깊은 수준의 논의를 거친 끝에 선정했을 게 분명한데, 놀랍게도 이 600점의 보존품 중에는 


정력팬티


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를 빛내고 있다는 표현을 써야하나? 아무튼, 착용자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성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아이템이 현대인의 생활과 서울을 대표하여, 서울시가 도읍으로 정해진지 600년을 기념하여 지금 서울시 지하의 타임캡슐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 지금 당장 2394년의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소중한 문화를 떠올려보자. 2394년이라니, 까마득한 미래다. 그때까지 서울이 존재하기나 할지도 불확실하고, 대한민국이 존재할 것인지도, 한국인이 몇 명 남아 있기나 할지도 모를 미래다. 어쩌면 스카이넷 같은 악랄한 AI가 인류를 지배하거나 한창 몰살하는 도중일지도 모른다. 그때 레지스탕스의 해커 한 명이 타임캡슐의 위치를 알아내어, 위대한 반격의 희망을 품고 한 중대를 거의 다 잃어버린 끝에 타임캡슐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미래를 예견하고 중요물품을 매설해놓은 선조들의 지혜에 감사하며 슬근슬근 톱질해서 타임캡슐을 열었더니, 이게 왠 걸, 정력팬티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스카이넷은 정력팬티를 입은 채 절망한 레지스탕스 리더를 붙잡아 한껏 비웃을 게 틀림없다. 

-인간은 정말 한심하군. 그렇게나 종족보존을 하고 싶다면 원하는대로 해주지.

그리고는 레지스탕스 리더를 인간 농장 같은 곳에 가두고 건강한 종마처럼 취급하겠지. 덕분에 살해당하진 않았으니 정력팬티 만만세다. 


정력팬티와 그밖의 물건 599점이 묻혀있는 자리


잠시 극단적인 상상을 해봤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타임캡슐은 미래의 전쟁을 위한 보급품이 아니라 사료니까, 그 당시 유행하던 물품을 정직하게 넣은 것이리라. 강남 스타일이 유행하던 때라면 강남 스타일 음반을 선정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나… 이런 계통의 물품이 기막힌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를 보진 못했으므로 정력팬티의 효용이란 옥장판과 비슷한 수준으로 느껴지고, 결국 아무리 그래도 너무 쓸데없는 걸 넣은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뭐, 내가 고른 것도 아니고, 평가야 2394년의 사람들이 할 일이지만. 어쩌면 그때쯤 정력팬티 관련 주식을 사놓으면 돈방석이나 팬티방석에 앉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잘 메모해 두시면 큰 도움이 되겠죠?


그나저나 PDA를 쓰기 시작한 2005년 이전까지 나는 수첩을 애용하는 사람이었다. 일기도 2006년 초까지 손으로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아날로그 기록이었는데, 이게 단문을 자유롭게 기록하기는 편하긴 해도 이후에 검색하기는 무척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라, 일기는 작년에 고생해서 전산화를 마쳤다. 하지만 중고딩 때 쓴 수첩에 기록된 것은 딱히 이제와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알림장’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 그대로 놔두었는데,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운 노릇이라 PDA와 함께 박스에 잘 넣어 침대 뒤편 어둠속에 매설했다. 이것도 나의 타임캡슐이라면 타임캡슐인 셈이다.


이밖에도 타임캡슐처럼 잘 보존된 것들이 제법 있다. 고장난 이어폰들도 언젠가 한꺼번에 수리해서 잘 쓸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모아두었더니 서랍이 검무덤 비슷하게 되었고, 연극, 공연 팜플렛이나 티켓, 고등학교 시험지 따위도 잘 모아서 곳곳에 쑤셔박았다. 심지어 내 방에는 형이 연애하던 대학시절의 추억을 모은 사랑의 상자도 매설되어 있다. 내 물건 놓기도 모자란데 그런 물건을 내 방에 숨기다니, 이거야말로 Not in my back yard!라고 주장할 일이다. 


그런데 가끔 공간이 모자라서 분통이 터질 지경이 되면 대체 왜 이런 것들을 굳이 모아놨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진다. 가끔 꺼내보면서 추억에 젖는 것도 재미있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전산화했으니까 나머지는 좀 버려도 될 것이다. 애초에 추억에 젖을 시간도 별로 없는 마당에 굳이 이어폰과 팜플렛까지 갖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하여 최근에는 신변 정리하듯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보지 않을 책은 팔고, 팔 수도 없고 쓰지도 않을 물건은 버린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들부터 그렇게 처리하고 있는데, 몇 박스를 그렇게 치워버리고 나니 마음이 좀 가뿐해진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추억을 보존하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다. 


이 대규모 과거 청산을 미래의 내가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다. 타임캡슐이나 뒤적일 정도로 한가해질 나이까지 살아있다면 그때 그걸 버리지 말 것을, 하고 자신을 저주할지도 모르고, 더 일찍일찍 버리고 깔끔하게 살 걸 그랬다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정력팬티처럼 시답잖은 물건을 놓아두면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은 확실하다. 버릴 것은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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