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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19. 2016

좋은 생선 싫은 생선 따로 있나

고기는 정말 좋아하지만 생선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생선도 물고기니까 고기가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고기는 고기 육 자를 쓰고 생선은 물고기 어 자를 쓰니까 같은 카테고리에 넣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같은 카테고리면 또 어떻단 말인가? 내가 이건 좋고 저건 별로라는데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진 않겠지.


아무튼, 생선의 결정적인 문제라면 역시 가시다. 흔히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니 어쩌니 하지만 생선은 그렇지도 않아서, 엄청나게 맛있지도 않은 주제에 귀찮게시리 가시까지 있다는 게, 흔히 말하는 ‘애기 입맛’인 나의, 생선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이다. 


그러고보면 이 ‘애기 입맛’이라는 변명도 쓰자면 참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어른이라면 응당 즐겨야 하는 음식, 예를 들면 콩, 나물, 국밥, 해장국, 해물탕, 생선찜 따위가 굳건히 있고 이것을 즐기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문화가 있어서, 그런 걸 먹지 않는다고 하려면 어쩐지 민망함을 느끼며 구구절절 이유를 갖다대야 하는데, 그런 귀찮은 변명들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방편으로 발명된 것이 바로 ‘애기 입맛’이 아닌가 싶다. 확실히 애기 입맛이라고 해 버리면 많은 면에서 편해지는 게 사실이긴 하다. ‘하하, 제가 애기 입맛이라서…’ 하면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괜히 먹기 어려운 음식 따위를 권해서 귀찮게 굴지 않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애기 입맛’이라는 카드를 쓸 필요가 없는 사회가 바람직한 게 아닌지? 내가 뭘 먹든 안 먹든 이상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거기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각설하고, 가시 때문에 생선의 가성비, 즉 그것을 먹기 위한 노력에 대한 맛의 정도는 평균적으로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선은 달다. 하지만 생선을 먹기 위한 노력은 심하게 쓰다. 당장 집에서 조기를 구워 먹는다고 생각해보더라도, 냄새도 냄새고, 발라먹는 것도 귀찮고, 쓰레기도 제법 나온다. 그러면서 그만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비해 엄청나게 맛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값이 싼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보관이 아주 오래 되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생선이란 퍽 호화로운 요리가 아닌지?


그래서 생선구이는 역시 나가서 사먹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물론 나야 조기구이를 돈 주고 사먹고 싶지 않지만, 생선구이 전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 삼치 정도라면 가끔은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삼치는 가시를 발라내기가 무척 간편하고, 닭가슴살처럼 통통한 살코기가 맛도 있다. 할수만 있다면 노력 경제성 인증 마크 같은 걸 만들어 찍어주고 싶다. 아구찜도 마찬가지다. 만들기는 아주 번거롭지만 가시를 바르긴 어렵지 않고, 얼큰한 국물이 배어든 살을 입에 넣고 씹는 맛이란 다른 요리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가시를 발라내기가 편한 생선이 합격이니까, 가시를 발라낼 필요가 아예 없는 생선들은 당연히 합격이다. 합격을 떠나서 이쪽은 대체로 대환영일 지경이다. 일단 회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멋진 음식이다. 자연의 은총이다(단, 세꼬시 제외). 연어는 연어대로 부드럽게 녹는 듯한 맛이 훌륭하고, 광어는 광어대로 통통하고 은근히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즐겁다. 참치도 멋지다. 언젠가 참치 전문점에서 질리도록 참치 회를 먹어보는 게 소박한 소원 중의 하나다.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연어 요리


회를 먹을 때 간혹 딸려 나오는 꽁치 구이도 아주 좋아한다. 꽁치구이의 미덕은 역시 가시를 씹어먹어도 된다는 것이라 아무런 걱정 없이 즐길 수 있고, 살을 한 웅큼씩 떼어다 와사비 간장에 찍어먹으면 구운 꽁치 특유의 불 맛과 와사비의 알싸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다른 생선들과 마찬가지로 꽁치도 머리쪽으로 갈수록 쓴맛이 강해지는데, 이것도 썩 나쁘지 않다.  


같은 이유로 빙어도 좋아한다. 먹을 기회라곤 딱 한 번 뿐이었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걸 쥐고 억지로 입에다 쑤셔넣는 게 부담스러워 죽은 것이나 튀긴것만 먹었지만, 통통하고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아주 훌륭했던 걸로 기억한다. 시샤모 튀김도 딱 한 번 먹어봤는데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장어가 있었지. 장어를 좋아한다는 건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전달되었겠지만, 아무튼 장어 구이도 멋진 음식이다. 여름철 보양식의 대명사에 가까운 이 요리가 정말 스태미너에 도움이 되는지는 과학적으로 측정해본 적도 실감해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기운 빠질 때 기름지고 맛난 것을 먹고 ‘이제 좀 낫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나처럼 식비를 아끼려는 이에게는 구름 위의 음식이나 다름없었던 장어 덮밥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출시된 덕에 몇 번이나 저렴한 가격에 호사를 누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간편하게 장어 덮밥을 먹고 있자면 세상이 (자본주의적으로) 더 진보해가고 있구나 싶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가끔은 가시가 그렇게 문제라면 가시가 있든 없든 신경쓰지 않고 씹어 먹으면 될 게 아닌가? 하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받을 때가 종종 있다. ‘가시는 씹어 삼켜!’라는 어른들의 주장이 바로 그것인데, 글쎄, 그게 되는 생선의 폭이 나는 많이 좁은 모양이다. 어릴 때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고생한 적도 있고. 


어른들이 가시도 맛나게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생선 중에는 그 유명한 ‘전어’ 도 있다. 이것은 어찌나 별미로 여겨지는지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까지 있을 지경인데, 최근에 우연히 먹어보니 어째 명성이 부풀려진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시는 씹어먹을 정도로 작거나 연하지 않은 주제에 많기까지 해서 발라내기가 대단히 고역스러웠고, 살이 맛있긴 했지만 고작 그걸로 집 나간 며느리 운운할 수준도 아니었다. 고양이도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전어 굽는 냄새에 지긋지긋한 가사노동이 플래시백 된 며느리가 더블배럴 샷건을 들고 돌아온다면 또 모를까.


그건 그렇고 나는 애기 입맛임을 방패로 사용하면서도 그런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취향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삭힌 홍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슈르스트뢰밍 다음으로 냄새가 지독한 음식이라는데, 내 입엔 맛있는 걸 어쩌겠는가? 홍어는 뼈를 바를 필요도 거의 없고, 통통한 살을 씹는 맛도 좋으며, 입에 넣었을 때 확 끼쳐오는 그 화한 느낌도 훌륭하다. 멘솔 담배를 피우는 것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멘솔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과 삭힌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어쨌든 삭힌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 평생 딱 두 명 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나는 홍어를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왜 먹지 못하느냐고 묻거나 꾹 씹어 삼키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게 옳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맛있는 건 혼자 먹고 싶기도 하고, 내가 절대적인 마이너리티임을 알기 때문이다. 가시가 많은 생선을 좋아하는 건 메이저일까 마이너일까? 


생선을 좋아하는 게 메이저인지 마이너인지 한국에서는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일본에서 메이저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생선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일본 가정식 아침으로는 생선 구이가 메인 디쉬로 나오곤 하는데, 생선 구이라면 일단 겁을 먹고 보는 나도 조우할 때마다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가시가 적은 연어나 붉은살 생선일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름지고 맛있는 생선 구이와 흰 쌀밥으로 아침부터 배불리 먹는 즐거움에는 육고기로는 맛볼 수 없는 깔끔한 충실함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일본에 놀러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큐슈에서 먹은 모듬회 덮밥.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아름답군요.


그런데 대체 왜 한국에선 장수의 비결로까지 지목되는 붉은살 생선 말고 흰살 생선을 많이 먹는 것일까?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이건 타고난 민족적 취향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어획량의 문제였다. 태평양을 면한 일본은 덩치 큰 붉은살 생선이 많이 잡히고, 그렇지 못한 한국은 조그만 흰살 생선이 많이 잡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 때문에 한국에선 생선을 회로 먹을 때 산 채로 운반해서 신선한 활어회로 먹는 경우가 많고, 일본에선 큰 생선을 오래 살려둘 수 없어 며칠 숙성해 먹는 선어회나, 그것을 밥에 올려 먹는 초밥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는 나도 태평양 연안에서 태어났다면 ‘생선은 대체로 좋아하지만 흰살 생선만 좀 별로인 것 같아요’ 하고 생선 애호가를 자처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지리적 특성과 어획량이 이렇게 사람의 미래를 바꿔놓기도 하는군요. 생선 좀 가려 먹는다고 딱히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후기

본문에 ‘연어나 붉은살 생선’이라고 적었는데 이것은 어째서일까요? 정답은 '연어는 흰살 생선이기 때문’입니다. 저만 최근에 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붉은살 생선은 역시 최고라고 생각하며 먹어온 연어는 사실 흰살 생선인데 먹는 것들이 붉어서 그렇게 빨개진다는군요. 꽃게를 빨간색 크레파스로 그리는 아이 같은 착각이었습니다. 뭐 어쨌든 빨갛든 하얗든 맛만 있으면 그만이 아닐까요? 아, 연어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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