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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13. 2017

쓸모없는 추억의 공간 살해

어릴 때부터 쓸모없는 물건을 모으는 버릇이 있다. 나름대로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할 작정이면서도(돈이 없으면 명예를 위해 추구해봄직한 스타일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서' '어쩌면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등등의 이유로 버리지 못하거나 모으는 물건이 제법 있어서, 이것들만 두고 봐도 빈말로도 미니멀한 라이프가 어쩌니 하는 헛소리는 할 수 없을 상황이다.


꿈꿀만한 미니멀 라이프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봤던 시험지라든지. 처음에는 물론 오답 체크라는 성실한 목적 때문에 모으기 시작한 것인데, 이게 어째 나중에는 기록 수집 그 자체에 의의를 두게 되어 오답 같은 건 시험이 끝나고 한 10분만에 다 체크했으면서 도무지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반으로 접었을 때 7~8센티 정도 두께가 되는 시험지들이 여전히 내 책상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있다. 그렇지 않아도 책장이 모자라 난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버릴까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악착같이 모은 기록을 버리는 것도 아쉬운 느낌이 들고, 그렇다고 전부 사진을 찍고 버리자니 번거로운데다 또 보지도 않을 것을 왜 그렇게 찍어야 하나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릴 때 쓰던 수첩들도 버리지 않고 모아놓았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필요한 메모를 수첩에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들도 귀중한(어디가 귀중한진 모르겠으나) 기록이 아닌가 싶어서 모두 박스에 잘 넣어 보관하고 있다. 마치 정상적인 정부의 관공서가 처리했던 문건을 모두 지하서고 같은 곳에 갈무리해  두듯이. 요 10년 사이 스마트기기가 등장해서 기록들이 디지털화 되었다는 것은 실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스마트기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서너대 되는  PDA를 썼고, 이것들을 팔아치울 타이밍을 잡지 못해 이 기기들도 고스란히 넣어두었다. 이건 정말 누가 봐도 공간 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기는 쓸 일이 전혀, 장담코 절대 없고, 데이터 역시 따로 컴퓨터로 빼서 백업해두었으니 완벽하게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비싼 돈 주고 사서 자나깨나 곁에 두고 다닌 물건이라는 이유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처분할 시기를 놓친 핸드폰들도 보관해두었으니, 이것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도통 공간을 존중할 줄 모르는 처사다. 공간 죽이기의 마술이다.


한편으로 뭔가 확고한 의미를 가졌던 것 같으면서도 나중에 흐지부지된 케이스도 있다. 영화표가 그것이다. 자신이 본 영화표를 모아두는 행위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예 티켓을 붙이고 옆에 감상을 적는 앨범 같은 것들도 나왔으니까(아직도 시판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버리긴 뭣하다 싶어 영화를 봤던 순서대로 상자에 모아두었다. 사실 이 '뭣하다 싶어'라는 발상이 가장 문제지만, 어쨌든 상자에는 '반지의 제왕' 부터 영화표가 차곡차곡 지층처럼 쌓여 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화관에서 비용절감이랍시고 표를 영수증으로 교체하면서 모으는 맛도 의미도 희박해졌고, 모으는 것 자체도 힘들어졌다. 여럿이 봤을 때 한 장으로 나오는 것도 곤란하구나 싶었는데 이제 시간이 지나자 표를 인쇄하는 행위 자체를 생략하게 되었다.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자연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자연 보호를 위해 우표는 이제 생산하지 않습니다' 라는 선언을 들은 우표 수집가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일생동안 본 영화표를 모두 모아뒀지' 하는 기록으로서의 의미도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애초에 표가 감열지로 바뀌었을 때, 영화표의 글자들도 자신의 기원을 잃어버린 마티 맥플라이의 사진처럼 사라질 것이 예정 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아무튼 허탈하기 짝이 없는데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난처할 따름이다.


그러고보니 잡지 역시 처치 곤란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2년 정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구독했는데,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아무리 훌륭하고 재미있는 잡지일지언정 한 번 보고 나면 영 다시 볼 일이 없는 것은 다른 잡지와 딱히 다를 바가 없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터들은 전화만 걸었다 하면 종이책으로 놔두고 두고두고 보는 게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일장연설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쩌자고 이렇게 처분이 난처한 물건을 전자책으로 보지 않았나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한때 프라모델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 후회막급이다. 그리 많이 산 것도 아니고 조립할 때 아주 신나게 만든 것도 사실이지만, 끝난 뒤는 영원히 문제가 된다. 프라모델을 놓을 곳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 감성이 늙어서 쒸융쾅쾅 하며 갖고 놀수도 없으며, 프라모델이란 꼭 다 만들어도 반드시 부품이 미묘하게 남기 마련이라 박스를 버리기 애매해진다. 애니메이션처럼 프라모델이 움직이며 싸우는 '건프라 배틀'이라도 생기면 좋으련만........ 하지만 완성된 프라모델을 유용하게 활용할 방법이라곤 장식하는 것 뿐인데 장식할 수 없으면 순전히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니, 만드는 데 90퍼센트 이상의 의의가 있었던 셈이다. 고양이가 아무리 귀여워도 키우려면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처럼 프라모델이 아무리 멋있어도 만들고 나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살 일이다. 하다못해 레고처럼 재조립이라도 가능하면 좋으련만.


기타등등 동인지를 비롯해서 딱 한 번 즐기고 다시 즐길 확률이 심하게 낮은 것들, 그러면서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보면 한숨이 푹푹 나온다. 매컬리 컬킨이 부잣집 아들로 나왔던 영화 '리치 리치'를 보면 도둑들이 눈에 불을 켜고 부부를 협박해서 쳐들어간 창고에 가족들의 추억에 관한 물건들만 가득해서 황당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도 어지간한 물건은 그런 창고에 잘 보관해두고 싶다. 물론 내가 '창고'라는 것을 갖게 될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정리를 하지 않은 근미래의 내 방


결국 시간이 가면 언젠가는 새로운 삶을 위해 미련을 하나씩 내다버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어릴 때 썼던 장난감들을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이제 와서 후회하듯이 요즘 산 책이나 장난감들을 내다버리고 60대쯤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모든 걸 안고 살다간 추억에 파묻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내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추억은 결국 추억이 아닌가? 중국에서 문화재가 너무 많이 출토되면 대충 사진만 찍고 폐기처분한다는데, 나도 그 자세를 좀 본받아야겠다. 딱히 인류학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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