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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20. 2017

매일밤 멜라토닌의 노예가 되고 싶어

하루 일과를 얼추 마치고 밤을 맞이하면 기분이 제법 유쾌하다. 프리랜서들 중에는 체력이 남아있는 한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는 모양이지만, 나는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핑계로 노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 밤에는 숨을 돌린다.


그런데 이것도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 씻고 나와서 잡일을 처리하고 차를 끓인 뒤 ‘이제 뭐라도 좀 볼까?’ 하고 자리에 앉으면 이미 자정 전후다. 이렇게 맥빠지는 일도 좀처럼 없다. 뭐가 되었든 스트레스를 좀 해소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래서야 먹고 자고 노동하는 회색빛 인생이다. 그래서 이 심심한 인생에 희미한 색채라도 더해보려고 놀다 보면 한 시를 훌쩍 넘기고 만다. 이제 ‘더 놀다 잘래!’ 하는 자신과 ‘착한 어른은 빨리 자야지’ 하는 자신이 싸울 시각이다. 물론 다음날을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자야 한다. 휴식도 일의 일부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이렇게 억지로 선택하는 잠이란 한약을 먹는 것처럼 달갑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초저녁에 졸지 않았고, 심리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지만 않았다면 나는 금방 잠드는 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요즘들어 새벽에 반드시 한 번 깨어난다. 잠에서 깨는 시각은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 영화나 소설이라면 그 시각에 초현실적인 일이라도 일어날 법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없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 흡연을 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하지만 화장실에 다녀온 시점에서 잠이 이미 상당부분 달아나버려 다시 자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잠이 올 때까지 보겠다고 핸드폰을 집적거리다 더더욱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당연히 다음 날 몸상태는 말이 아니게 된다.


이 짓을 반복하다간 모든 게 엉망이 되겠다 싶어 핸드폰을 멀찍이 두고 자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깨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두 번에 걸쳐 자고 있다. 심하면 세 번까지도 잔다. 조명 기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17세기 유럽 사람들이 일찌감치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나 인터미션을 즐기고 다시 잤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사람들처럼 일찍 자지 않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수면 보조제를 선택해야 했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멜라토닌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숙면을 도와주도록 분비되는 호르몬이라 부작용이나 의존증이 생기지 않는다는데, 복용해보니 실제로 그랬다. 먹고 나면 오래지 않아서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져서 한 시라도 빨리 자고 싶어지고, 그 상태에서 잠에 빠지면 적어도 7시까지는 깨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복용하는 이 수면 보조제의 구입처와 가격을 링크하고 여러분 모두 건강 챙기셔야죠! 하면 재미있겠지만, 사실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약이 너무 잘 듣는 것이었다. 기똥차게 잘 잘 수는 있었지만 12시가 되도록 이 수면 모드가 해제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 나에게 뭘 먹인 거냐!’ 하듯 비틀거리다 책상에 쓰러져 잠들어버리는데, 계속 피곤한 것보다는 좀 나을지 몰라도 이건 이것대로 좀 난처한 상황이다. 어제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커피를 마시며 버텼는데, 졸리는 약이 깨지 않아 잠 깨는 음료를 또 마시다니 이 무슨 짓인가?



깨지 않고 깊이 잔다는 건 축복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자면 다음날 힘들겠지만...


그래서 이제부터 약을 쪼개서 절반만 먹어볼까 생각중인데, 아무튼 인간이 잠드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싶어 마음이 씁쓸하다. 예전에는 분명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잘 자고 일어났는데, 그것이 이제는 롤스크린으로 창문을 가리고, 안대로 눈을 가리고, 숙면을 위한 화이트노이즈를 트는 것도 모자라 수면 보조제까지 쓰게 된 것이다. 인간의 3대 욕구란 사실 인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기능인데, 요즘들어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잠도 잘 오지 않으니 기본 기능 셋 중에 둘이 망가진 셈이다. 이러다 오래지 않아서 배설도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되어 약을 따로 챙겨먹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영 심란하다. 유명인들 중에는 종종 ‘늙어가는 것은 멋지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이쪽은 살던 집이 무너지는 꼴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기분이다. 빈말로도 멋지지 않고,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익숙해져야 하지만.


예전에도 주장했던 것 같은데, 10대일 때 2차 성징에 대해 배우듯이 20대에는 30대 이후로 찾아오는 노화의 징후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20대부터 죽을 때까지 내리막길만 걷게 되어 있으니, 이 시점도 2차 성징 못지 않게 중요하다. 다들 어디 동사무소 강당 같은 데 모여서 ‘여러분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빛나는 시기는 이제 곧 끝납니다. 앞으로 길고 긴 내리막길과 어두운 터널만이 기다리고 있죠. 지금부터 그 내리막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하는 강의를 들어야만 한다.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강의를 들었더라면 나도 지금 덜 우울하지 않을까…….


(이 글을 올리는 오늘은 새벽 5시에 깨어나 잠이 오지 않길래 참다 못해 약을 4분의 1 갉아먹었습니다. 그나마 좀 낫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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