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쓰든 소설을 쓰든 다양한 경험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 수월하기 마련이라 딱히 꺼려지는 부분이 없고 여건이 괜찮은 이벤트라면 곧잘 참여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모 잡지사에서 진행한 하우스 파티에 간 적이 있다. 이것도 취재라면 취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우스 파티’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그것이었다. 헐리웃 영화를 보면 허구헌날 나오는 바로 그것. 즉, 2층 이상으로 구성된 주택에 DJ를 불러 요란한 음악을 믹싱시키고, 그동안 손님들은 집안 곳곳에 서서 작게 어깨를 흔들며 병맥주 따위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는 것이다. -아, 크리스, 이쪽은 제니퍼야, 제이퍼, 이쪽은 크리스. 각본가라니까 얘기해보면 재미있을 거야. 제니퍼는 스타트업 쇼핑몰 사장님이시죠.- 대강 이런 식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집주인은 어째서인지 꼭 누군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2층의 빈방으로 올라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본의 아니게 내 뇌리에 각인된 하우스 파티다.
물론 나도 평균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니까 ‘묘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복장 그대로 파티장으로 향했다. 내가 기대한 것은 오로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서양 중산층의 전유물로 느껴지는 하우스 파티의 분위기가 어떤지 직접 느껴보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 이런 파티에 참여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요는 거기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안내문에 '간단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만 다른 손님들과 같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주시면 고맙겠다’고 적혀 있었으므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프링글스를 샀다. 대단히 고급스러운 음식은 아니어도 프링글스라면 누구라도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마 나 혼자 과자를 꺼내고 다른 사람들은 푸아그라나 캐비어 따위를 꺼내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테니.
역에서 꽤 오래 걸었는데, 신촌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그날 신촌에서는 공교롭게도 물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도로 위에 가설식 무대와 물미끄럼틀 따위가 설치되고, 너도나도 수영복 차림으로 뛰어나와 물총싸움을 벌이는 날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피아식별 없이 물총을 쏘아댔고, 상인들은 별일이 다 있다는 눈빛으로 구경하면서도 물총을 든 참가자가 오면 호스로 물을 부어 주었다. 나는 종군기자처럼 물을 맞지 않게 조심하며 그 옆을 지났다.
그리하여 도착한 집은 대단한 부촌에 있었다. 돌아보는 곳곳이 으리으리한 단독주택 뿐이었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정원이 딸린 2층집이었다. 1층집이나 3층집 따위는 심한 따돌림을 받고 쫓겨난 듯한 이국적 거리였다. 나는 약간 주눅든 채로 파티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DJ를 발견했다. 정말 DJ였다. 그는 믹싱에 쓰는 그 전용기기 앞에 헤드폰을 쓰고 서서 가볍게 몸을 흔들며 음악을 틀고 있었다. 요란하게 하우스 뮤직을 믹싱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 누가 트집 잡을 수 없는 DJ가 맞았다. 이건 상당히 감명 깊었다.
한편 손님들은 붐비지 않는 정도로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하우스 파티와 달리 주최측이 테이블을 꽤 충실하게 마련해놓아서 다들 자리에 앉아 맥주와 과자를 먹으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모두 20대로 보였고, 복장은 멋스럽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정도로 무난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요상한 세계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럭저럭 반가운 상황이었다.
아무튼 잡지사도 아무 맥락도 없이 대뜸 파티만 하자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일정에는 강연회가 끼어 있었다. 2층에 있는 깔끔한 강연실에는 대강 20~30석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눈에 띄지 않으려는 산업스파이처럼 다소곳이 앉아서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뭘 팔거나 종교를 권유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대표와 소속 기자가 차례로 잡지사의 비전과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나쁠 것도 없지만 대단히 좋을 것도 없는, 호감가는 교수의 첫 시간 자기 소개 같은 강연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추첨으로 잡지 한 권과 로밍 상품권을 받았다. 나로서는 여우가 호리병을 받은 격이었지만 나쁠 거야 없었다.
문제는 강연이 끝난 다음이었다. 나는 이 강연자들이 당연히 술자리로 내려가 사람들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받으며 이야기를 이끌 줄 알았다. 강연을 통해 집중된 공감대를 이용하는 편이 분위기를 띄우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부흥 운동에 실패한 망국의 일족들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1층으로 내려가서 DJ 앞을 지나 맥주를 받으러 갔다. 맥주가 흐르는 수맥이라도 발견한 것인지 1층 안쪽에서 버니니를 무제한 공급하고 있었다. 심지어 안주로 과자까지 주고 있었다. 나는 반듯하게 생긴 바텐더 같은 남자가 따주는 버니니를 들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자리에 앉고나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인지만, 이 파티장에 혼자 온 것은 나뿐이었다. 두 명이면 반드시 커플이었고, 세 명이나 네 명이면 친구들이었다. 다들 강연이 딸린 일일 주점에 온 느낌으로 방문한 게 아닌가 싶었다. 당연히 다른 그룹과 교류가 있을 턱이 없었고, 나 역시 제정신인 이상 ‘안녕하세요, 잡담이나 해보실래요?’ 하고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안내문에 적힌 대로 다들 먹을 것이라도 가져왔으면 트레이드를 시도해봤겠지만, 먹을 것을 가져온 사람은 나 뿐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뭔가를 하나쯤 가져왔는데 과자가 무제한 제공되고 있어서 꺼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다음에야 있든 없든 매한가지였다.
결국 나는 자리에 앉아서 버니니 두어 병을 비우며 경품으로 받은 잡지를 대강 다 읽었다. 그동안 서양인이 낀 그룹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DJ 앞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장소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인지 오래지 않아서 그만두고 버니니를 마시다가 나갔다. 나도 버니니를 마시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지하에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기에 내려가 감상했다. 전시실에서 나오면 전시실 모양 말고 기억나는 게 없는 류의 사진전이었다.
다시 2층 테라스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테라스 한쪽에 있는 테이블 위에 누워있던 커플이 내 눈치를 보고 일어났다.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는데 미안한 일이었다. 나는 그 길로 파티장을 뒤로했다. 평화적인 물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길을 따라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프링글스를 먹었다.
말하자면 일상의 축소판 같은 행사였다. 소박한 기대를 안고 출발했지만 실상은 기대와 전혀 달라서 어찌되든 나와 별 상관 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운 좋게 딱히 원하지 않는 책과 쓸일 없는 상품권을 받았으며, 영 귀에 거슬리는 음악 속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술을 비우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참가비를 계산해야 했다. 그 사이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해 보려던 사람들은 떠나버렸고, 끼리끼리 모인 사람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잘 지낼 따름이었다. 공지를 따른 준비물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서 알아서 처분해야 했다.
쓰다 보니 점점 화가 치미는데, 이렇게 시시한 하루에서도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들어가는 것도, 버니니도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는 것이리라.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것만큼 기쁜 일은 아니지만, 어중간한 영역에 있는 것들 중에 나와 맞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치워버리는 것도 인생을 명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만 모이는 파티도 가지 않고 버니니도 마시지 않을 작정이다. 파티와 버니니는 그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 즐기면 될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