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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18. 2017

어서오세요 이케아 월드

2014년에 개장한 이케아 광명점을 이제야 가봤다. 어느덧 2017년도 저물어가는 상황이니 꽤나 늦은 탐방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사전 조사를 눈곱만큼도 하지 않아서 매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기껏해야 세 시간 쯤 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이게 웬 걸, 롯데월드도 이것보다는 좁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실제로는 매장 면적 59000평방미터니까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122000평방미터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실제 쇼룸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그보다 훨씬 줄어들겠지만, 그 공간내의 동선을 재주좋게 미로처럼 꼬아놔서 돌아다니는 거리는 끝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당장 들어가서 앉아볼 수 있는 쇼룸이 끊임없이 놓여 있으니 도통 질릴 틈도 없다. 놀이공원에 아무리 놀이기구가 많아도 세 걸음 걸어간 자리에 다른 게 또 있지는 않으니까.


어쨌거나 이 쇼룸이라는 것들이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드림하우스를 한 조각씩 잘 떼어와서 착착 진열해 놓은 것이라 뭐 하나 부럽지 않은 게 없고, 소품도 제법 생동감 있게 진열해둬서 정말 남의 집을 구경하는 기분이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담요를 덮고 인형을 쓰다듬을 수도 있고, 냉장고에는 곡물 사진을 넣은 수납용기나 빈 맥주캔 따위가 들어있다. 옷장을 열어보면 배트맨 수트 진열대처럼 그럴듯한 불이 들어와 안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가지들을 비춘다. 뭐, 이 옷가지들이 옷장이 아니라 소파 팔걸이나 의자 팔걸이에 수북이 쌓여 있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겠지만, 그것까지 구현하면 다들 좋은 가구를 사봤자 그 말로는 이런 것이구나 싶어 정신이 퍼뜩 들 테니 어쩔 수 없겠지. 책장도 현실을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인지 대다수의 한국인은 읽을 길이 없는 스웨덴 책이 같은 것으로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책상에 펼쳐져 있는 아동용 전과 따위는 한국 것을 그대로 갖다놔서 깜짝 놀랐다. 스웨덴에는 전과가 없는 걸까? 아니면 놀랍도록 뜨거운 한국의 교육열을 자극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일까? 그러나 뭐가 목적이었든지 간에 나는 그런 것 없이도 상당히 큰 자극을 받았다. 어째선지 그 어떤 책상 앞에 앉아도 내 방 책상보다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 책상이 더 넓고 자신에게 그럭저럭 최적화 되어 있는데도 이케아의 북유럽식 책상에 비하면 고루하고 공간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 물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카페의 비좁은 바 석이 더 일하기 좋아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이 소파에 기대보고 저 의자에 앉아보고, 몇 걸음 걸어 다른 집을 구경하고 하면서 또 하나 놀란 것은 역시 가격이었다. 오기 전 까지는 ‘아무리 싸봐야 북유럽 가구니까 기본 20~30은 하겠지’ 하고 그냥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쇼룸에서 보니 군침이 질질 흐르도록 갖고 싶은 서랍장, 책장 따위가 원목만 아니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쌌다. ‘오다 싸게 팔길래 샀어’ 하고 살 수도 있을 정도로. 병원만 가면 반드시 인테리어 잡지를 뒤적이는 나로서는 유혹이 가득한 자본주의 테마파크, 혹은 동시다발적 홈쇼핑 채널의 교차점에 빨려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꿈만같은 북유럽가구... 는 물론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여섯 시간에 걸친 구경이 끝난 뒤, 결과적으로 내가 산 것은 체코산 찻주전자와 인도산 방향제 뿐이었으니…… 그 이유는 물론 볼 것도 없이 이케아의 가구가 아무리 환상적이어도 내 생활에 그것을 가져올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가령 오지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쓰러져 있는 남자를 구해줬는데, 그가 사실은 대단한 유목민 족장이어서 감사의 뜻으로 천하의 명마 한 필을 선물해줬다고 치자. 그게 아무리 적토마처럼 멋진 말이라 해도 한국으로 데려와 유용하게 탈 수는 없는 일이다. 애초에 운반할 수도 없을 뿐더러 둘 곳도 없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집도 차도 없는 게 가구는 무슨 가구? 그리고 내 방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치더라도 내 방은 이미 집 안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포화 상태라 ‘가구’ 라고 할 만한 것은 그 무엇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바닥부터 드러나 있는 벽의 길이는 고작 40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행거, 장, 책상, 책장, 침대, 거울 따위로 막혀 있다. 모든 책장은 천장까지 책과 잡동사니가 올라가 있다. 같이 간 친구들 모두 상황이 딱히 다를 것도 없어서 고작 1만원 밖에 하지 않는 그럴듯한 무드 등을 보고도 둘 곳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 다들 가로나 세로가 30센티미터를 넘고 바닥에 놓아야 하는 물건은 살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아이들과 미술관을 구경할 때 ‘방에 놓을 것 하나씩 골라봐라’ 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대단히 진지하게 보더라고 누군가(김영하는 아니다)가 말한 적이 있지만, 이케아의 경우는 반대였다. 방에 놓을 것을 고른다고 생각할 수록 더 화가 나고 우울해지고, 냉소적이 되는 것이었다. 멋진 식기들과 아름다운 백합 화분이 놓여 있어, 보고 있는 것만으로 당장이라도 친구들을 불러모아 홈파티를 벌이고 싶어지는 식탁을 보고도 ‘이게 우리 집에 있다면 백합 화분 대신에 비타민과 영양제가 빼곡히 놓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집 식탁 한쪽에는  TV 시청용 아이패드를 거치하기 위해 선반을 하나 짜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양제의 침공으로 돌이킬 수 없이 점령당했다. 북유럽 사람들은 식탁 위에 꽃병이나 화분이나 갓구운 쿠키가 가득한 바구니를 놓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식탁 위에는 항상 대여섯 종류의 영양제가 궁궐 앞의 해태처럼 건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하지만 역시 영양제들을 아름답게 배치할 방법따위는 도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영양제 뿐만이 아니라 한 개인이 일생동안 긁어모은 소품이란 하나씩 세기 시작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누구든지 보기 싫은 것을 잘 치워둘 공간을 따로 마련해둔 게 아니라면 쇼룸 같은 방을 얻게 된 대도 쇼룸처럼 예쁜 생활을 할 수는 없다. 요는 이케아의 쇼룸을 보는 자세의 기본은 ‘북유럽 현대 거주공간 체험전’ 감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시 영양제 따위는 잊어버리고 자본주의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어 ‘나도 언젠가는’ 하며 북유럽산 가구들을 쓰다듬는 게 재미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재미를 느끼려면 당연히 집이 있어야 하는데…… 이케아는 언젠가 깔끔하고 스마트하고 저렴한 조립식 쉐어하우스 같은 걸 만들 계획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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