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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25. 2017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주는 방법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정치적 지도자가 이런 소리를 했다간 혁명이 일어나야 정상이다. 나 역시 그런 혁명이 일어난다면 광장 구석에서 촛불 정도는 휘두를 용의가 있다. 아무튼 노동, 노력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시대인 것이다. 


이런 불공정한 상황이 문화 콘텐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몇 줄을 적어봤지만 뻔한 데다가 딱히 읽기에 즐겁지도 않고 그냥 넋두리로 흘러가는 경향이 심해서 삭제했다. 피로 사회니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그러니 주제에 맞게 개인사에 대해서 적어보자면, 보상이 그리 신통치 않다 보니 수면의 사이클 부터 점점 엉망이 되는 것 같다. 사람이란 그날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그날 얻으면 금방 잠들 수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을 했더라도 그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충분히 해소할 만한 여유를 얻었거나, 혹은 머지 않아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확신이라도 얻었다면 하루가 가는 게 그렇게 아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생활을 하다 보니 매일 밤이 MT 마지막 날 저녁처럼 아쉬워지는 것이다. 자연히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놀다가 늦게 자고, 늦게 잤으니 다음날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음날 능률이 떨어지고, 그러니 충분한 노동량을 달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늦게까지 고생을 했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다시 늦게 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오늘 늦게까지 고생했으니 내일 일찍 돌아와서 쉬려면 일찍 자야지’라는 생각은 도무지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보상이라는 걸 도통 찾기 힘들다 보니 자꾸 맛있는 것을 찾게 된다. 그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어디 맛집을 찾아가서 근사한 한 끼 식사를 즐기는 것이라면 그나마 낫겠는데, 그럴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으니 가까이서 구할 수 있는 저렴하고 자극적인 것을 사다 먹는 게 습관이 된다. 달고 짜고 맵고 바삭바삭하고 칼칼하고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것들을 저렴한 가격에 많이 사서 먹는 걸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이래서야 매주 철인 28종 경기를 한대도 살이 빠질 턱이 없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예산이 모자라 적자가 났는데 대출을 해서 새 사업을 시작해보죠’ 같은 짓이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이런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 건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생을 하면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는 보상체계를 완성해야 한다고, 최근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보상이 이상적일까? 대강 기준을 생각해봤다.


1. 경제적일 것.

2. 일회적이지 않을 것.

3.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

4. 시간을 과하게 빼앗지 않을 것.

5. 혼자 즐길 수 있을 것.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혼술이 즉시 탈락한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건강 때문이다. 게다가 별로 경제적이지도 않다.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 등장한 전극이다. 뇌의 쾌감 중추에 전극을 연결해서 스위치만 누르면 기막힌 쾌락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일정한 노동을 마칠 때마다 이 전극으로 쾌락을 느끼면 돈도 들지 않으면서 가장 순도 높은 보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핸드폰처럼 어디 대리점에 가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까, 도입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좀 있다.


네가 원하는 보상은 이 안에 있단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 '힘들지만 오늘도 집에 돌아가면 게임을 할 수 있어' 라는 희망과 게임의 재미라는 보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 보상은 한동안 상당히 괜찮게 작동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닳는 보상'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면 닳는다. 같은 걸 반복하면 점점 재미없어져서 새것을 찾아야 했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은근한 문제였다. 돈도 돈이지만, 내 컴퓨터에서 할 수 있으면서도 저렴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찾는 것 역시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2012년형 맥북에어에서 무슨 게임이 되는지 알아보는 것부터 재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래서야 게임을 하는 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더라도 맞는 게임을 찾는 시간을 컨트롤할 수 없다.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따위를 보는 거라면 사양을 가릴 필요가 없긴 하다. 게다가 명색이 작가니까 직업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도움이 된다’는 점 때문에 어쩐지 일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집안일을 하다가 재미삼아 마늘이나 양파를 깔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것 역시 내가 마음에 들 작품을 고르는 피로가 만만치 않다. 시간이 남아돈다면 형편없는 작품을 보고도 다음에 더 괜찮은 걸 찾으면 되지 뭐, 하고 털고 일어날 수 있지만, 가진 시간을 모조리 돈으로 치환해야 하는 처지에는 그렇게 웃고 넘어갈 수가 없다. 실패 한 번이 뼈아픈 손실이 되니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다. 뭔가 볼까 하다가도 한참을 망설인 끝에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소모가 심하고, 경제적이지도 않고, 거의 일회성에 가깝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한 끝에 찾은 보상이 어처구니 없게도 나에게 돈을 주는 것이었다. 애들 용돈 주듯이 술을 안 마시면 천 원, 일찍 자면 이천 원, 이런 식으로 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돈이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데다가 건강에도 이롭고, 시간도 빼앗지 않으며, 혼자 즐길 수 있다. 엄청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돈이 있는 한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은 돈이 벌써 5만원에 달했다. 이 돈은 내가 평소라면 죄책감을 느낄만한 곳에 아낌없이 써버릴 작정인데, 어디다 쓸지 생각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다.


다만 결정적인 문제는 역시 이 돈이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돈을  왼쪽 주머니에서 빼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긴 다음 오른쪽 주머니만 보고 기뻐하는 식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모은 돈을 죄책감 없이 쓰기로 작정했으면서도 정말 그렇게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심지어 상금을 줄 일이 있을 때 ‘아, 내가 술을 안 마시는 대신 상금을 받았네!’ 하고 기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상금을 줄 일이 없을 때도 ‘아, 내가 술도 마시고 상금도 줄 필요가 없게 되었네!’ 하고 쓸데없이 기뻐하기 시작해서, 이 짓을 시작한 지 한달을 넘긴 지금에 와서는 어찌되든 별 효용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결국 오랜 방황 끝에 완벽한 보상이란 없다는 결론밖에 얻을 수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혼자서 어떤 보상을 설정하고 누리려 해도 반드시 그 보상에 대한 손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손실을 감당할 여유가 없으니까 보상 설정 자체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손실을 남에게 떠넘길 수 없는 이상, 내가 잃어도 아쉽지 않은 것을 필요한 보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잃어도 아쉽지 않은 게 없는 상황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거나 아주 작은 비용으로 대단한 보상을 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한 이런 것은 ‘덕질’ 밖에 없다. ‘뇌’에 나오는 전극이 없으니 그게 최선이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갑자기 뭔가를 미친듯이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 해도 경제성을 따져가면서 미친듯이 좋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여전히 니코틴을 흡입해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것을 유일하게 확정적인 낙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뭔가 획기적인 보상을 기대하고 계속 읽으신 분이 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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