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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Nov 01. 2017

완벽한 미용실은 너의 거짓말

미용사가 쉴새 없이 말을 걸어서 난처하다는 얘기를 자주 봐서, 말 많은 미용사 싫어하는 건 누구나 똑같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글을 쓴 적도 있는데, 알고 보니 미용사는 미용사 나름대로 손님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말을 거는 것이고, 또 손님 중에는 그렇게 얘기하는 걸 반기는 사람도 많다는 모양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도 의외의 일면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나는 자꾸 말을 거는 미용사를 성격상 좋아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상대에 대해 기본적인 사항을 파악하고 얘기를 시작하려면 직업을 묻기 마련이라 ‘학생이세요?’ ‘무슨 일 하세요?’따위 질문을 하곤 하는데, 나처럼 보편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랑할 것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자면 영 대답하기가 곤궁하기 때문이다. 얘기를 못할 것도 없지만 작가나 번역가라는 말을 꺼냈다간 무슨 책을 썼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라 그런 질문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세상에는 가슴을 펴고 자기 책 자랑을 하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한정적인 상황에서만 그런 얘기를 마지못해 꺼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문제 때문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미용실은 가지 않게 되었다. 다른 불만은 없는데 원장이 자꾸만 이것저것을 물어서 대답하기 지쳐버린 것이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추석에 우리 가족이 어떤 교통수단으로 어디까지 내려가서 며칠 지내고 오는지 알려주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미용실을 가지 않게 된 나는 집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대학교 앞 미용실을 다시 이용하게 되었다. 졸업한지 한참이 지났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갈 일이 생겨서 대단히 무리한 짓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곳은 대학가라서 가격도 비교적 쌌고, 대학가니까 당연히 나를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고 호구조사 따위를 하지 않았다. 잘 자를 때도 있고 못 자를 때도 있고 기복이 있긴 했지만 허용범위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학교 근처에 갈 일이 급격히 줄어드는 통에 이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집주변에서 비교적 저렴한 미용실을 찾아 눈 딱 감고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미용 클리닉과 미용실을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보아하니 40대 이상의 어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인 듯했다. 적어도 학생들이 즐겨 찾을 만한 미용실은 아니었다. 요는 친근한 동네 미용실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나는 이런 지역 친화적 가게 주인은 반드시 호구조사를 하기 마련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첫 방문때 상당히 긴장했다. 심지어 뭘 물었다 하면 취준생이라고 둘러댈 준비까지 마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원장은 머리를 자를 때 필요한 사항 몇 가지를 물을 뿐, 그밖에 아무런 호구조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 모양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얼굴이 신통치 않은 탓인지 머리를 자르고 마음에 들어하는 법이 없는데, 그런 내가 마음에 든다고 느꼈으니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단번에 새 단골 가게를 찾아낸 셈이었다.


미용실이 괜찮은지 시험해보는 데에는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 미용실에도 단 한 가지 묘한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가게 안에 주구장창 CCM을 틀어놓는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흠, 흥미롭군’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이게 회를 거듭하며 점점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대체 왜 하필 CCM이란 말인가? 물론 점포 주인이 자기 점포에서 무슨 노래를 틀든 그것은 자기 마음이긴 하지만, 이런 곳에는 비교적 취향을 타지 않을 만한 음악을 틀어놓는 게 보통 아닌가? 고르고 골라서 가장 종교색 짙은 음악을 틀어놓을 필요가 있나? 


물론 원장이야 온건하고 평화로운 CCM을 싫어할 사람 따위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CCM을 무한반복해서 틀어놓은 것이리라.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개를 싫어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세상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한국 CCM이라곤 프로그래시브 락 그룹인 ‘예레미’의 곡밖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자르는 내내 CCM을 듣는 게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종교적인 색채를 떠나서 그 미용실에서 나오는 곡 모두가 그리 세련된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면 그건 또 종교적 반발로 들릴 것 같아서 가만히 듣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싫어하던 최신 가요 리스트가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몇 시간씩 앉아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얌전히 그 미용실을 다녔는데, 두어달 전에 결국은 그 미용실에서 발을 끊을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문제는 음악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터졌다. 머리를 자르기 전에 ‘투 블럭으로 해드릴까요?’라는 질문에 ‘아니오’ 라고 단호하게 대답을 했음에도 머리를 자르고 보니 투 블럭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나의 이상한 기호에 대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투 블럭의 유행을 보고 흥미롭지만 나만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어울리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그런 스타일을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눈을 감았다 뜬 사이에 머리를 투 블럭으로 정리 당했으니, 한동안 스포츠컷으로 밀어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지경이었다.


원장이 주문받은 머리를 깡그리 잊어버린 이유는 아마 중간에 군대에서 온 아들 전화를 받고 와서 다른 손님들과 한참 동안 잡담을 한 탓이 아닐까 추측한다. 미용실 아들이 머리를 다른 데서 자르진 않았을 테니 아마 아들 머리를 밀던 날이 떠오른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명탐정 같은  추리력을 발휘해서 폭거의 이유를 맞춘들 이미 잘린 머리가 돌아오진 않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최대한 거울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떠나간 계절이 다시 돌아오듯 머리가 자라길 기다렸고, 마침내 머리를 다시 자를 때가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내가 싫어하는 머리로 만들어 놓은 미용실은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꼴을 당하느니 자기소개를 하면서 머리를 자르는 편이 낫겠다.


어쨌든,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미용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이 평균적이며 모난 곳이 없는 미용실을 찾는 것조차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역시 수행승처럼 머리를 밀고 사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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