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배우자와의 일담
이제 막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숨소리에 눈이 감기려는 참, 신랑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신기한 게 책이 분량이 되게 많다는 거야."
책을 달고 사는 나를 도발하는 걸까? 그래, 상대해 주자. 내일은 토요일이니 꽤 긴 이야기가 되어도 괜찮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요약하면 한두 줄인데, 왜 그리 길게 설명하느냐는 거지?"
피곤한 아내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스럽던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타고난 두뇌의 그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사실 그런 점이 좋아서 같이 산다. 끝없는 호기심과 스스로 답을 찾는 그가 처음으로 나의 독서생활에 관심을 가진 것이 그저 반가웠던 밤.
그의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굳이 책으로 만든 책도 많다'는 것이었다. 충분한 고민과 성찰이 없는 억지스러운 이야기들은 잠깐 훑기도 버거웠고, 억지로 읽어보려 한들 저자에 대한 희미한 거부감만 남았다.
반면 조금 투박하거나 서툴러도 '작가'가 궁금해지는 글들이 있다. 문장들로 지어진 세상이 점점 입체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그 설계자가 자연스레 떠오르고, 그의 이야기를 좇아가다 보면 나는 육신의 한계에서 해방되는 쾌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꾸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다가 찾아 헤매던 문장이라도 만나는 날엔 아끼는 수첩에 조심히 옮겨서 이리저리 감상하며 그 기쁨을 나의 어딘가에 새기려 애쓴다.
당신은 아직 모르는구나, 매일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이 기쁨을.
뒤척이는 아이를 토닥여가며 몇 분을 혼자 떠들어댔다. 조용히 듣던 그의 입에서 '나도 한 권 읽어봐야겠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그는 손뼉을 딱 치며 '음악 같은 거네요!'라며 결론짓더니 잠에 빠졌다. 그래 이 좋은 책, 나만 또 다른 세계로 길게 떠났다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