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크루아상

by 수련

오랜만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겨울 휴가지를 프랑스 파리로 정하고 갑자기 프랑스어를 배워볼까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학원을 등록하거나 책을 사는 식으로 거창하게 시작한 건 아니고 그냥 어플 하나를 깔았다. 매일의 소소한 재미가 추가되었다. 틈만 나면 단어의 짝을 짓고, 빈칸을 채우고, 성우의 억양을 따라 한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한 학기 정도 선택 과목으로 프랑스어를 배웠었다. 기본적인 인사 말고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해 보면 교내 프랑스어 시 낭송 대회에도 나갔었고 다른 과목을 제쳐두고 시험 기간에는 공부도 꽤나 열심히 했었다. 그때는 좀 삐딱선을 탔던 터라 국영수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닌, 입시에 거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을 시간을 들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왠지 낭만 있었달까, 진짜 공부를 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시험 같은 건 볼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니 이제는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던 것을 오늘 새롭게 알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그런 단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뭐든 달라도 비슷한 매일 속에서 여행과 외국어 공부만큼 그런 삶의 관성을 정통으로 배반하는 건 없는 것 같다.


시험이 목표가 아닌 공부를 한다는 것, 언어를 언어 자체로 배운다는 것이 여전히 조금 낯설지만 그래서 더더욱 작은 성취에 기쁜 나날이다. 어제 350개의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며 배지를 받았다.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뭔가 새로운 걸 이만큼 배워본 게 언젠가 싶다.


이제 프랑스 영화를 볼 때면 중간중간 반가운 단어가 한 두 개 튀어올 것이다. 이번 휴가 때 파리의 어느 골목 빵집에서 주문 정도는 한 번 해볼 수 있을 것이다. Je voudrais un croissant, si'il vous plait. 초심자의 정석적이고 예의 바른 표현으로 크루아상을 사야지. 이 정도로 목적 달성인 공부라면, 이런 가벼운 마음이라면 뭐든 기꺼이 새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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