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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pr 16. 2023

알고리즘 시대, 내 취향을 지키는 법

지수는 기내용 이어폰을 뜯어 연결했다.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어보았다. 음질은 형편없었지만 매일 새로운 음악을 하나만 발견해도 좋은 하루라고 믿고 있었다. 비행시간이 여섯 시간이나 남았으므로 기회는 충분했다.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정세랑의 책 <시선으로부터>를 읽다가 ‘매일 새로운 음악을 하나만 발견해도 좋은 하루라고 믿고 있었다’는 구절에 꽂혔다. 취향이 멈추거나, 흘러간 사람이 되는 것을 유독 경계하는 편이다. 속한 업계의 특성 탓도 있겠고, 그저 성격 탓도 있겠지만, 10대 20대에 듣던 노래들이 평생의 취향을 결정한다는 말 같은 건 왠지 무서웠다.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친구들과 매일 노래 추천을 하기도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돌아가면서 상대가 모를 만한 좋은 노래를 추천해 준다.  명이라도 알면 다시 다른 노래를 가져와야 한다. 노래 추천을 하는 친구들의 무리는 계속 바뀌었다. 꽤나 매력적인 프로그램(?)인지 이야기를 들으면 서로들 같이 하자고 했지만 역시 꾸준히 노래를 추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각자의 레퍼토리가 바닥나고, 매일 꾸준히 서로에게  노래를 알고 있는지 묻고 후기를 얘기하는  지칠 즈음 자연스럽게 끝났다. 그래도  덕분에 300 이상의 새로운 노래를 추천하고 추천받았다.


여럿의 취향이 섞이고 나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매일 한 곡을 추천하거나 추천받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뭐든   들여다보게 됐다. 제목도 곱씹고, 모르던 가수라면  가수의 다른 노래도 들어보고, 앨범 재킷도 구경했다. 시간이 남으면 뮤직비디오도 봤다. 추천받지 않았으면 아마 평생 몰랐을 노래들도 있었고, 어떻게든 알게   취향의 노래를   빨리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거나 매일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경험은 비슷하게 흘러갈 하루에 작은 생기를 더해줬다.


평소 신곡도 열심히 듣는 편이다. 거의 모든 음악 어플을 이용해 보고 한 어플에 잠정 정착했다. 내 취향에 맞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추천한다는 유명한  음원 사이트들보다 이 어플이 좋았던 이유는 객관적 신곡, 객관적 인기곡을  편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플레이리스트는 사실 놀라울 만큼 좋을  . 어쩌면 나보다  취향을 훨씬  알고 있을 테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선택까지 넘기고 싶지 았다.


직접 찾아낸 음악들이나, 친구들이 내가 좋아할  같다고 추천해 주는 다정한 마음이 담긴 노래들, 혹은 전혀  취향이 아니었지만 사연이나 역사가 덧붙여지며 취향을 초월하게 되는 것들이 좋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음악이나 잠시 들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도 조금이라도 좋으면 음악 검색을 통해 제목을 찾아내고야 만다. 소음이 해 검색이 안되면 어떻게든 가사를 알아내서 검색한다. 이런 좌충우돌 빙글빙글 디깅이  재미있다. 두고두고 꺼내 음미할 노래를 직접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발견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유튜브의 무슨 무슨 플레이리스트들에도 아직은  흥미가 없다.   느낌을  신뢰하고 싶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노래들로 신중하게 엄선하여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평소엔 그걸 랜덤 재생해 가며 듣는다.  플레이리스트에 1000곡까지밖에 담을  없어 요새는 1000 이내의 곡들로 유지하고 있다. 1000곡이 넘어  추가가 안될 때는 기존 노래들에서 탈락곡을 선정한다.  노래는  이상 우리와 함께   없습니다, 판정을 내리고 혼자 마음 아파하며 삭제한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에 자부심을 갖는 편이다. 가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이동할 일이 있을 때면 가능한 내 휴대폰을 연결하고 함께 차에  사람들의 취향고려한 노래 찾아 튼다. 블루투스 논쟁?! 첫 음이 나오는 순간 주위의 반응이 궁금해 혼자 입꼬리를 씰룩이기도 한다.


애초에 취향이란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만나 생겨나는, 논리성이라곤 없는 것인가. 가끔은 검색하다 오타를 내서 우연히 발견한 노래를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불과 1 전만 해도 다양한 이유로 싫어했을 것이 뻔한 멜로디에서 매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취향은 유기체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믿는다.  취향에서 알고리즘이 결을 찾고 특징을 발견하려 해도, ‘네가  취향을 알아?’ 코웃음 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유튜브 영상의 주도권은 사실 이미 진즉에 알고리즘이 가져간  같지만, 음악만은 안된다 근엄하게 외치고 싶어지는 음악사랑맨.


자랑스런 내 취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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