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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pr 09. 2023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울 때

며칠 전 뜬금없이 지난 카카오톡 대화 목록을 훑어보다가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지난가을 내 생일, 함께 작품을 한 동료로부터 온 카톡이었다.


<A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게 대화 목록에 뜬다는 건 마지막 메시지라는 건데, 설마 내가 선물을 받고 답장을 안 했다는 건가? 놀라서 해당 대화창으로 들어가 보니 하단에는 미처 다 쓰지 못한 '우와' 두 글자가 보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아마도 답장을 보내려다 다른 급한 일이 생겼거나 전화가 왔거나 해서 끝내 보내지 못한 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리라. 그리고 이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 선물과 메시지들을 확인하느라 이 대화창은 아래로 아래로 밀린 채 지금이 된 것이리라. 지난 생일은 유독 바빴다. 한 살 더 먹은 걸 음미하며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냥 끝나버린 하루였다. 그럼에도 고맙게 많은 선물을 받았다. 받은 선물의 배송지 입력은 그때그때 하기가 힘들어 나중에 선물 페이지에 들어가서 한 번에 했다.


그러니까, 이 선물을 보낸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선물을 받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받을 주소만 입력한 셈이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이라 이후에 업무적으로 연락할 일이 없어 거의 반년이 흐른 뒤에야 발견해 버렸다. 늦었다고 말하기에도 늦어버렸지만, 그럼에도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담아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그랬네요? 저 그렇게 쪼잔한 사람 아니에요. 바쁘신가 보다 했죠. 그래서 이렇게 또 연락을 하잖아요.>


어른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무척 고마웠고 동시에 두려워졌다. 이번에는 늦게나마 알아챘지만 어쩌면 내게 보내진 많은 마음들이 이런 식으로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군가 선물이든 메시지든 작은 배려든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보내고 나면 강가에 띄워진 종이배처럼 그 마음은 어딘가로 출발한다. 수신인이 나임에도 미처 알아채지 못해서 받지 못한 마음들이 강을 떠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걸 내가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대책 없이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카카오톡의 지난 대화창을 자주 확인한다? 놓치지 않고 받아야 할 마음들이 많은 생일 같은 날에는 휴가를 낸다? 모르겠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많은 걸 놓치며 살겠지. 나중에 알고 쓸쓸해하거나 영영 알지도 못한 채로 지나가겠지. 그럼에도 고마운 마음들을 성실하게 포착하고 가능하면 내쪽에서 더 큰 마음을 채워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다짐만은 잊지 말기. 온지도 모르고 지나가버리지 않게, 눈을 크게 뜨기. 그리고 내게 오는 것과 관계없이 어떤 마음이 들 때는 자주 그 마음을 보내기. 그러다 보면 쌍방으로 떠다니던 마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길을 찾아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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