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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May 01. 2023

우리가 여기에 함께 있다

합주의 매력

대부분의 기타리스트라면 기타 솔로 파트가 나오길 기다릴 것이다. 잠시나마 단독 조명을 받고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순간. 그러나 그건 역시 대부분의 기타리스트 얘기다. ‘취미’ 밴드의 ‘초보’ 기타리스트인(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나에게 그것은 가장 원치 않는 순간이다.


화려한 기타 연주가 나오는 곡은 애초에 고를 수 없기 때문에 우리 합주에서 멋진 기타 솔로가 필요한 경우는 사실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전주나 간주에 잠시 드럼도 베이스도 보컬도 빠지는 순간이 온다. 별 수 없이 계속 연주를 이어가는데 그럴 때면 되게 큰 무대 위에 되게 작은 내가 혼자 서있는 초라하고 웃긴 기분이 든다. 아무도 기대한 적 없지만 그 순간 어깨가 무거워진다. 이런 소리로 내가 이 몇 초를 혼자 이끌어도 되는 것인가? 잘못 눌린 코드나 흔들리는 박자 같은 걸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 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다른 악기들이 들어오면 급속도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내 실력은 그대로지만 왠지 자신감이 생겨 나도 모르게 더 큰 소리를 내고 더 빠른 속도로 달리게 된다. 그런 합주를 하다 보면 반 친구들과 목청이 터져라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초등학교 음악 시간이 생각난다. 혼자 앞에 나와 노래를 하라고 했다면 훨씬 작은 목소리로 불렀을 테지만 여럿이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주는 확실한 안정감을 어쩌면 처음 느꼈을 순간.


요샌 정말 매일같이 사람을 만나지만 ‘함께’라는 감각을 실제로 느낄 기회는 흔치 않다. 알고 보니 다른 방향을 보고 있어 어긋나고 외로운 순간들이 어쩌면 훨씬 많을 테다. 그러나 합주를 하다 보면 분명히 몸으로 느끼게 된다. 내 소리와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길동무 같은 소리들이 이 두세 평 남짓한 합주실에 함께 있다.


최근에 밴드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이런 자화자찬을 했다. 이렇게 꾸준히 못하는데 이렇게 오래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대견하다며. 아마도 바로 그 함께라는 기분 덕분이 아닐까? 혼자 집에서만 기타 연습을 했다면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아무튼 꾸준한 친구들이 새삼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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