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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Feb 27. 2023

드라마 같은 엔딩은 없다

대부분의 마지막은 나도 모르는 사이 스쳐 지나간다. 졸업식처럼 누군가 주인공들을 한데 모아놓고는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으세요,’ ‘함께 해서 좋았죠?’ 같은 말들을 하며 이별을 떠먹여 주지 않으면 말이다.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자면 때로는 부지런함이 때로는 행운이 필요하다. 어찌 됐든 마지막은 대체로 처음에 비해 홀대받는다. 전에 다니던 회사 마지막 출근 후에 썼던 글을 오랜만에 읽었다.


마지막 출근을 했다. 텅 빈 책상을 바라보며 여운에 잠길 새는 없었다. 팀 동료들과 마지막 점심을 먹고 아쉬움을 나누다 부랴부랴 노트북을 정리하고 짐을 쌌다. 작별 인사를 하러 온 동료들과 포옹을 하며 조금 울다가, 또 책상에 와 짐을 정리하다, 생각지 못한 선물과 편지를 받고 울다가, 또 자리에 앉아 회사 컴퓨터 폴더 정리를 하다 그랬다. 결국 남들 다 퇴근할 때 퇴근도 못하고, 차로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선배를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한 후에야 모든 정리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사무실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도 여운에 잠기기보다는  뭐 빼먹은 건 없나, 노트북 포맷은 알아서 잘 된 걸까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급하게 카메라를 켜 이내 추억이 될 공간들을 영혼 없이 찍었고, 그렇게 마지막 출근은 끝이 났다.


3년을 꽉 채워 다닌 회사의 마지막 출근 치고는 싱거웠다. 돌아보면 이사를 할 때도, 몇 달간 살던 나라를 떠날 때도, 연인과 이별을 할 때도 대체로 마지막은 그저 정신이 없거나 조금 허무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픈 와중에도 늘 미국에 사는 늦둥이 사촌동생 얘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거렸다. 할머니는 내게 자주 첫사랑은 첫 손주인 나고, 끝사랑은 늦둥이 사촌동생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가 힘들어 보일 때면 첫사랑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휴대폰 속 동생 사진이며 영상을 할머니께 틀어드리곤 했다. 사촌동생이 할머니를 보러 한국에 올 날짜가 잡혔고 그때부터 할머니는 항상 오늘이 며칠인지, 아기가 언제 오기로 했는지를 물어보곤 하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늘 인간의 그리움이나 사랑 같은 마음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나도 모르게 그 근거 없는 믿음이 당연하게 여겨져서, 할머니도 그러시리라 생각했다. 건강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지만 사촌동생도 보고 가족들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으실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만남 같은 게 따로 준비되어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결국 동생이 한국에 오기 며칠 전 돌아가셨다. 딱 며칠만 더 있었으면 할머니가 매일같이 그리워하던 동생을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할머니가 위독하셔 응급실로 실려가던 순간에 첫사랑인 나는 자취방에서 숙취로 고통받고 있었고 끝사랑인 사촌동생은 너무 먼 타지에 있었다.


늘 이런 식이다. 내가 상상하는 마무리는 없다. 마침표가 온전히 잘 찍히는 마무리는 늘 흔치 않다. 대체로는 그냥 갑자기 뚝 끊기거나 서서히 옅어지다 사라진다.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도, 별안간 찾아오는 마지막도 실은 전부 다 찰나에 불과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는 건 그야말로 꿈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냥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현재의 순간들을 부지런히 살아갈 일이다. 아무것도 나중으로 미루거나 언젠가 해결되리라 기대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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