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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Feb 19. 2023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찾아서

달, 별, 꽃, 바람, 웃음 그리고 우리의 농담

연초에 늘 수많은 목표를 세우곤 하지만 올해 특징적으로 추가된 게 있다면, 매달 말일에 월말 결산을 하자는 것이었다. 연말에 한 해를 돌아봤다면 잊혔을 소박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기록하여 박제할 수 있다는 것이 월말 결산의 장점이다. 일단 1월은 잘 지켜냈다. ‘이달의 재미’ 같은 시시한 걸 고심할 수 있어 좋았다. ‘올해의 재미’라고 하면 아마 훨씬 꼽기 어려웠을 것이다. 재미란 건 대체로 순간이고 또 가벼우니까. 얼마나 재미있었는가 순위 같은 걸로 한 해의 일들을 나열하려다가 ‘재미란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찰이라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누구보다 재미없어지니까.


1월의 재미는 단순했다. <도쿄에서 친구들과 내내 영양가 없는 말장난을 나누며 논 것>. 오랫동안 맡았던 프로그램이 끝나 휴가로 가득 찬 한 달을 보냈는데, 그렇게 오래 놀고 쉬었음에도 막상 돌아보니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그저 영양가 없는 말장난을 나누던 순간들이었다.


한창 바쁘게 일하던 시기에는 하루의 기본 표정도,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말투도, 어쩌면 인생관도 모두 다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일을 할 때의 나는 분명하게 말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이후에 오갈 질문을 최소화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만이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피차 바쁜 사람들일 테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무척 중요했다. 유치한 말장난이 떠오르는 순간에도 정말 친한 동료들과 함께하지 않는 한 그런 말의 파편들은 꾹 삼키고 만다.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상황과 말들을 고르고 골라 내뱉게 된다.


편한 친구들과 휴가를 떠나니 발화의 목적 자체가 달라졌다. 우리가 내는 것은 때론 말이 아니라 그저 소리이기도 했다.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각자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떠들고, 의미 없는 돌림노래를 중얼거린다. 유행어를 누가 더 비슷하게 적절한 순간에 써내느냐 하는 것 따위에 집중하고, 무방비하게 얼굴을 구기며 웃다 보면 필요한 말만 해야 할 것 같아 한껏 날을 세우던 마음이 조금은 무뎌지고 둥글어졌다. 유치해져도 좋다. 과장된 얼굴 필터가 씐 스티커 사진을 찍고, 토끼 머리띠를 하고 테마파크를 누비고, 무작위로 떠오르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같은 농담에 웃고 있다는 것, 같이 이 풍경을 겪고 있다는 것, 오직 그 감각만이 중요해진다. 그 또한 다른 의미의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미스터 션샤인> 희성의 대사가 떠오르곤 했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영양가라곤 없어도, 색색의 막대사탕처럼 그저 다디단 깔깔거림으로 채워진 아름답고 무용한 시간들이 새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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