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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Feb 12. 2023

어떤 눈물

지난겨울 난생처음 과호흡이 왔다. 예고도 없이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 것이 시작이었다. 손끝부터 저린 감각이 밀려오더니 스멀스멀 온몸으로 퍼졌다. 그 감각이 천천히 몸을 타고 심장까지 다다라서 금방이라도 심장을 멈춰버릴 것 같았다. 공포스러웠다.


이후 모든 일들은 현실감이 없이 흘러갔다. 회사 사운드실 바닥에 대자로 누웠고 구급차를 탔다. 119 대원이 내 손가락에 뭔가를 꽂고 이내 다른 대원에게 말했다. 아 과호흡이네, 일상적인 어투였다.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호흡법을 배웠다. 짧게 들이마시고 깊게 오래 내쉬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주 주말부터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 상담 센터는 도심 한복판 고층 오피스텔에 위치하고 있었다. 4개 호선의 지하철이 지나는 복잡한 동네였다. 창문 밖으로 끊임없이 오가는 차들이 보였지만 상담실은 마치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진 공간처럼 조용했다.


온화한 인상의 선생님이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느릿느릿 차분하게 내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상담 테이블에는 유독 부드러운 티슈가 놓여있었고 선생님의 질문에 첫 대답을 꺼내는 순간 바로 그 쓰임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억울하고 창피했다. 무엇보다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일어난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런 기분이 들면 나도 모르게 상담 받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물었다.


- 다들 이러나요?


다들 그런다는, 그러니 별 거 아니라는 말로 위로받고 싶었다. 직업윤리 때문인지 선생님은 다른 내담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첫 상담을 마치고 눈물을 닦은 휴지 뭉치들을 한데 모아 버리려고 휴지통을 열었다가 발견했다. 눈물을 닦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양의 휴지들이 이미 휴지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눈물의 흔적. 이상한 위안의 한 순간이었다.


상담을 끝내고 오피스텔 밖으로 나오니 새삼 시끄러운 도시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말소리, 발소리, 음악소리, 지나가는 차가 울리는 경적들. 그리고 이내 나도 그 소리와 풍경의 일부가 되어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조금 마른 얼굴을 한 채 내 옆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도 어쩌면 저마다의 모양으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도시로 나오는 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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