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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May 22. 2023

진짜 내 마음은 뭘까?

글쓰기 널 사랑해 그러나 널 미워해

매주 일요일에는 글을 쓴다. 안 쓰면 안 된다. 마감을 어기면 글쓰기 모임 친구들에게 5만 원씩 보내야 한다. 어느덧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은 2명에서 4명으로 늘어 벌금은 20만 원이다. 이제는 정말 우정으로 합리화하며 약해질 수 없는 금액이 되었다. 별 수 없이 쓴다.


사실 별 수 없다는 표현을 하기엔 내가 이 모임의 추진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센 척을 하며 금액을 올린 것도 나다. 하지만 동시에 일요일만 되면 괴롭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뭔가를 써내야 한다는 사실이 어깨를 누른다. 부담의 무게는 마감 시간인 밤 12시가 가까워질수록 무거워진다. 문제는, 그런데도 그런 마음의 짐을 이고 지고도 내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시간을 끈다는 거다.

 

그래서 일요일은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글 쓰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군말 없이 해낼 수 있다. 다방면으로 능률이 높다. 오늘은 며칠 전에 사뒀던 야채들을 손질해 냉동실에 얼렸다. 한참 파와 마늘을 썰고 있으려니 눈이 매웠지만 굴하지 않고 요리를 시작했다. 닭갈비를 넉넉히 만들어 얼리고, 미역국도 잔뜩 끓여 얼렸다. 며칠은 반찬 걱정이 사라졌다. 엄마한테 받은 들깨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 키친타월 파종법을 연구했고, 부엌 싱크대 거름망 청소도 하고, 물이 시원찮게 내려가던 세면대도 뚫었다. 그러다 기어이 야밤에 화장실 바닥 타일을 솔로 벅벅 문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조금 웃었다. 살림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뭐?' 싶을 것이다. 흔한 주말의 루틴이겠지. 하지만 나는 집안일을 싫어한다! 못한다! 하루에 하나만 해도 버거울 일들을, 그래서 몇 주를 미뤄왔던 일들을 오늘 하루 만에 다 끝냈다. 낯설게 반짝거리는 욕실을 얻었다. 책상 앞에 앉는 그게 그렇게 싫어서 일일 살림왕이 되었다.


그럼 사실 결론은 쉽다.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다. 돈 주는 마감이 아니고 돈 내는 마감이니, 글 쓰기 모임 탈퇴 선언을 하면 된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건 선택지에 없다. 글쓰기 모임 친구들과는 술만 먹으면 글 잘 쓰고 싶다, 따위의 희망사항을 안주 삼는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나? 미워하나? 쓴다는 행위 자체가 좋은가? 뭔가가 남는다는 사실이 뿌듯한 건가? 진짜 내 마음은 뭘까?


막연한 행복의 조건들을 그리다 보면 늘 뭔가 쓰고 있는 내가 있다. 언젠가 풍광 좋은 마을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 내게 여유의 상징은 한낮의 카페에 앉아 노트를 끄적이는 거다. 그것이 일기라도 상관없다. 대단히 비장한 마음이나 목표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캐주얼하지도 않은 정도의 애매한 거리감. 여전히 글을 쓴다는 것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평생 어떤 식으로든 무엇이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소설가 조정래는 글을 쓰는 일을 '황홀한 글감옥'이라 했다. 하루 16시간 글을 썼다던 거장의 말을 일주일에 신변잡기적인 글 한 편 쓰는 내가 감히 공감해도 되는 건가 작아지다가도, 명쾌한 방향이나 동기 없이 그냥 계속해나가는 일도 있는 거지, 하며 쓴다. 글쓰기에 대한 내 마음은 아직도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오늘은 우선 20만 원 안 낸다. 일단은 그걸로 됐다.


널 사랑해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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