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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May 29. 2023

식물을 키운다는 건

‘공부는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나는 똑같고 거기에 새로운 지식이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경험은 언제 해도 신선하다. 늘 지나치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많은 것을 더 자세히 더 선명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취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취미 부자답게 늘 다양한 것들에 천착하고 있지만, 요즘 유독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식물이다. 겨우내 바쁘고 힘들어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제 자리에서 조금씩 자란 우리 집 식물들이 기특했고, 봄을 맞이해 새로운 식물들을 들였다. 처음에는 인테리어를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당당히 관심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하루에 큰 비중을 식물을 돌보거나 ‘식멍’을 때리는 데 쏟는다. 공부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이 반갑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밌는 세계에 아직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니! 그리고 정말로 해상도가 높아졌다. 드라마 속 주인공 방에 스치듯 나온 식물의 이름을 혼자 반가워 외치게 되고, 예능에서 연예인이 내가 아는 화원에 방문하면, 그래 그래 저기 좋지, 하며 뿌듯하다. 출근길 늘 지나가던 상점 밖에 내놓은 화분들을 보며 반가워하고, 그저 축하의 상징이던 꽃다발 안의 꽃송이들이 하나하나 보인다.


그러다보니 친근한 것이 늘었다. 길거리에서도 회사 복도에서도 식물을 만나면 괜히 잎 한 번 만져보고 눈길 한 번 더 주고 지나가게 된다. 아스팔트 틈에 피어난 꽃들을 유독 오래 지켜보게 되고, 꽃나무의 꽃이 다 지고 난 후 나는 초록 잎에도 관심이 간다. 평소보다 어둡고 축축해 싫어하는 비 오는 날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식물 같은 건 관심 없다는 사람들을 보면, 먼저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도 된 양, 흥 나중엔 좋아하게 될걸! 하며 속으로 삐죽 대다가도 식물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을 만나면 근거 없이 착한 사람일 거라 믿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이소 화분 코너에 나랑 같이 오래 서있던 할아버지에게 혼자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쨌거나 삶의 골목골목에서 친근한 것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은 제법 힘이 된다.


며칠 전 팀 회식 날, 선배와 퇴근길 동선이 겹쳤다. 조금 어색하게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있다가 선배가 휴대폰을 들길래 마음 편하게 나도 휴대폰을 하려던 하려던 찰나에, 선배가 먼저 휴대전화를 내 쪽으로 보여주며 말을 건넨다. 회식 자리에서 둘 다 식물을 키우고 있다는 공통점을 알게 된 후였다. 사진첩을 열어 집 선배 베란다 사진을 보여주려던 거였다. 집을 정글처럼 만드는 게 꿈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선배는 금목서의 향이 얼마나 좋은지, 몇 년을 키우고 있지만 꽃이 피지 않아 아쉽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나도 덩달아 내 사진첩을 열어 물꽂이 중인 우리 집 로즈마리도 보여주고, 귀여운 수박페페도 보여줬다. 그렇게 함께 앉은 길은 꽃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선배와 헤어진 후 약간의 취기와 함께 금목서의 향을 상상하며 집에 가는 길은 평소보다 조금 더 들뜬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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