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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un 26. 2023

경기도민에게 동네 친구란

나는 다소 뜬금없는 동네에 살고 있다. 연고?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를 알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회사와 가깝나? 멀다. 많이 멀다. 빨간색 광역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가 지하철을 한 번 갈아 탄 뒤에야 회사에 닿는다.


그럼에도 이곳을 택한 이유는 별 거 없다. 이 동네에 한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듯 처음 만난 순간이 기억난다. 우연히 환승을 하러 들른 동네였다. 90년대 중반에 개발된 지역이라 이제는 꽤나 낡았지만 그만큼 오래 자란 큰 나무들이 많은, 평화롭고 조용한 동네였다.


그렇게 좋은 첫인상과 함께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서 이곳에 살게 된 지도 어느덧 3년이다. 오후 4시쯤 되면 아파트 단지로 두부 트럭이 들어와 댕댕 종을 울리고 저녁이면 사람들이 걸음을 맞춰 하천 주위를 산책한다. 며칠 전에는 아파트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야시장이 열렸다. 간이 테이블 수십 개가 펼쳐졌다. 저마다 들뜬 채로 푸드 트럭들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구경하고 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봤다. 정겨웠다.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야외에 모여 월드컵을 응원하던 기억이 났다. 같은 반 친구들과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런 곳에서 우연히 만날 수밖에 없었다.


유년기에 가장 오래 살았던 동네와 개발된 시기부터 분위기까지 많은 것이 닮아서, 낯선 곳이었지만 금방 마음이 편해졌다. 스무 살 이후 서울 경기 곳곳을 떠돌아다녔지만, '우리 동네'라는 느낌이 든 건 이곳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조금 오래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지금 사는 동네의 유일한 아쉬움은 걸핏하면 만날 동네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맥락 없이 택한 동네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동네 친구에 대한 구체적인 로망들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레를 한 냄비 가득 만들어 나눠 먹고 집 근처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서로의 집에서 의미 없이 뒹굴대며 수다를 떨다 쿨하게 헤어지는 동네 친구.


그런 친구가 간절한 나는 동네의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일단 이동 시간이 30분 이내라면 동네 친구다. (친구의 차를 타고) (차가 막히지 않으면) 30분이 걸리는 곳에 사는 친구와는 정말로 동네 친구처럼 자주 본다. 비록 우리 사이에는 고속화도로가 있지만.


그리고 오늘 새로운 기준이 추가되었다. 환승하지 않으면 동네 친구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글쎄 우리 집에서 그 집 앞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는 거다. 50분 정도 걸려 버스를 타고 친구 집에 갔다. 슬리퍼 신고 동네 친구네 간 것처럼 피자를 시켜 먹고, 유명 연예인이 아침마다 즐겨 먹는다는 디저트를 함께 만들고, 혼자라면 보지 않았을 법한 영화를 보고,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소파에서 뒹굴거리다가, 한강을 산책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쯤 걸려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서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럼에도 환승을 하지 않았으니 아무튼 동네 친구다.


오늘도 경기도민의 거리 감각에 대한 밈을 보며 낄낄대고 관념적 동친들과 앞으로 또 뭐 하고 재밌게 놀지를 고민한다. 진짜 동네 친구가 이사오기를 기다리며.


짤이 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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