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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ul 02. 2023

다짐 중독자의 새 다짐

데드라인의 노예가 되지 말자

어제부로 2023년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다짐이 취미인 사람은 그런 날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일기장을 바꾸고 새로운 다짐을 했다. 맨날 하는 레퍼토리의 다짐들에 더해, 이번에는 내 생활 패턴에 없던 새로운 종류가 추가되었다. 그건 바로 '데드라인의 노예가 되지 않기'이다!


이게 얼마나 큰 다짐인가 하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데드라인의 파도를 타고 모든 걸 아슬아슬하게 마감하며 살아왔다. 그 스릴을 즐겼다. 대부분의 일은 마감 날짜로부터 역으로 계산하며 진행했다. 커가면서 그 계산의 정확도는 높아졌고, 단위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늘어났다. 덕분에 하고 싶었던 걸 놓친 적도, 후회할 만큼 큰일이 생긴 적도 없다.


어릴 때 학교 숙제나 기숙사 방 청소(청소 검사를 하는 기숙사에 살았다..)도, 성인이 된 후 취업 준비나 회사 업무도, 대체로 늦게 시작하고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뭔가를 일찍 미리 마무리해 본 적이 없다. 대신 뭐든 남들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안 하면 망하니까'라는 살벌한 이유가 붙지만 어쨌든. 취업 준비를 할 당시 자기소개서도 항상 마감 시간 0.1초 전에 제출했기 때문에, 필기시험을 보러 가면 내 수험번호는 맨 끝이었다. 가끔 나보다 뒤에 사람이 있으면 '오 즐길 줄 아는 놈이군' 싶은 동류의식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마감 시간 직전에 나오는 엄청난 집중력과 모든 게 마무리된 후 느끼는 후련함은 늘 한 세트였고 그건 너무 재밌었다. 배수의 진을 친 후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끝낼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이었다.


며칠 전 문득 나는 왜 이렇게까지 데드라인에 맞춰 모든 걸 진행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사실은 최종적인 오케이 사인을 시간에게 넘겨 버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내가 만족하고 마무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 안에서 최선인 결과물을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놓는 것. 내심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일찌감치 매듭을 짓는 게 어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문제없이 이어져온지 몰라도 언젠가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까 후회하기 전에 한 발 앞서 새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점을 찍는 주체는 나야!! 왠지 자기개발서 같은 마무리이지만, 부디 이번 다짐은 오래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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