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 Jun 19. 2023

귀여운 엔딩 크레딧

픽사 영화 속 프로덕션 베이비

영화를 볼 때 웬만하면 애써 지키는 것 한 가지. 끝난 뒤 나오는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본다. 어릴 때는 그냥 시네필인척 하려고 재미없어도 꾹 참고 봤고, 어느 순간부터는 마지막 음악까지 듣고 싶어서 보게 되었고, 그러다 최근에는 크레딧을 보는 게 재미있어졌다. 이쯤 되면 나도 시네필?(아님) 작년에 맡았던 작품이 이례적으로 극장 개봉을 하게 되어 영화용 엔딩 크레딧을 정리할 일이 있었고, 그 후부터는 좀 더 디테일한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 저런 장소에서 찍었군, 저런 음악을 썼군, VFX팀은 저기구나, 하면서.


며칠 전 픽사의 신작 <엘리멘탈>을 봤다.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극장을 떠들썩하게 울리는 작품은 오랜만에 본 터라 마지막 장면을 본 후에도 쉽게 들뜬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언젠가 픽사에 들어가고야 말겠다며 농담처럼 하는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런 마음은 픽사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엄청나게 상승하고 팽창하곤 했다. 역시나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다 봤다. 픽사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는 특히나 내가 늘 기대하며 보는 파트가 있다. 크레딧이 거의 끝나갈 때쯤, '땡스 투'가 나올 무렵에 등장하는 '프로덕션 베이비(production baby)'이다. 그 자리에는 작품을 만드는 동안 태어난, 스태프들의 아기 이름이 적힌다. 프로덕션 베이비들의 이름까지 다 보고 나서야 영화가 진짜 끝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랑이나 우정 같은 테마를 늘 빼놓지 않고 담는 픽사 작품으로서 언행일치 같이 느껴져서 좋다. 그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그 작품이 꿈이든 그저 밥벌이이든 혹은 둘 다이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그들의 시간이 그저 정지되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사랑하며 살아가고 그 속에서 또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은, 볼 때마다 늘 어딘가 마음을 찡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작년의 내 경우에 크레딧을 꼼꼼히 정리하는 건 사실 꽤나 성가신 일이었다. 확인에 확인을 해도 최종 시사 때가 되면 미처 전달받지 못한 빠진 사람이 생겼고, 할 일이 산더미인데 급한 철자 수정 요청 같은 게 등장하곤 했다. 픽사의 업무 프로세스가 어떤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아마도 크레딧을 정리하는 건 개봉 전 거의 마지막 단계일 테다. 그 과정에서 프로덕션 베이비 같은, 사실 작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파트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일 것 같은데, 픽사는 첫 장편영화인 <토이스토리> 때부터 등장한 프로덕션 베이비 크레딧이 계속해서 전통으로 남아 유지되어 오는 걸 보면, 그 의지와 정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의 주인공 '맨발'은, 친구들에게 함께 영화를 찍자고 제안하며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라는 말을 한다. 그처럼 뭔가를 만드는 일은, 누군가의 계절을, 청춘을 쓰는 일이고 그 시간이 귀하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잊지 않고 싶다. 좋은 작품은 마침표의 마침표까지 잘 찍힌다는 걸 다시 한 번 배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나를 좋은 곳에 데려다 놓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