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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un 12. 2023

나는 나를 좋은 곳에 데려다 놓기로 했다

두 차례의 이직을 거친 나에게는 두 개의 지난 직장이 있다. 같은 업계에 있는 회사임에도 두 회사는 양극의 직장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일터가 그러하듯 각자 장단점이 있었지만, 유독 인상적이었던 건 매일의 삶과 건강을 대하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회사 A는 과로가 일상화된 곳이었다. 애써 건강을 챙기는 건 유난스러운 일로 치부되었다. 한 선배가, 이 일 하는 사람들은 나이 좀 먹으면 어디 혈관 한 군데 터지는 건 일도 아니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걸 듣고 그 태연함에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독서 같은 건 한가한 취미 생활이었다. 나는 탄압받는 지식인처럼 몰래 휴대폰에 e북을 넣어 이동 중에 책을 읽었다. 뭐든 '그 시간에 대본 한 번 더 봐야지'라는 말과 함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촬영 중에는 늘 그날의 걱정들을 나누며 식사가 이루어졌고, 편집실이나 사무실에 있을 때는 배달 음식들로 빠르게 끼니를 해결했다.


회사 B는 소위 '워라밸'이 좋은 회사였다. 일터 밖에서의 내 삶을 잘 사는 게 곧 업무의 성취로 이루어진다는 걸 B에서 배웠다. 점심시간이면 동료들과 요새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지 나누었고, 서로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염려해 줬다. 이때 간헐적 단식을 처음 해봤고, 구내식당에서 받을 수 있는 샐러드를 애용했다. 동기들과 물 많이 마시기 챌린지 같은 귀여운 도전들을 하며 서로 시도 때도 없이 물을 떠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두 회사 모두에서 회사와 나를 분리할 줄 몰랐다. A에 다닐 땐 과로와 수면부족, 대충 때우는 식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건강을 망쳤고, B에 다닐 때는 열심히 운동을 했고, 예쁘고 좋은 곳에서 천천히 먹는 식사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이 극단적인 차이는 좋은 깨달음을 줬다.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일터가 사실은 정말 많은 선택지 중 한 곳일 뿐이며, 한 군데의 상식이 다른 한 군데에서는 야만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두 회사를 거쳐 제법 만족할 만한 회사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 회사의 문화는 사실 A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그간의 경험들로 나는 이제 내가 소속감을 가질 곳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의 분위기와 관계없이 독야청청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나를 좋은 곳에 데려다 놓겠다 다짐한 거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건 꼭 회사일 필요도 없었다.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고 오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사는 동네가 될 수도 있었다. 가능한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좋은 곳에 속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차피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소속감을 느낄 곳을 정할 선택권이 생겼고 그 점은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해 주었다.


일을 하다 잠시 어느 하나 작은 것에 매몰되어 있다가도, 주말이면 함께 합주를 하고, 맛있는 식당에 다녀오면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연락을 주는 친구들을 생각하고, 언제든 함께 여행을 떠날 가족들을 생각하고, 주말이면 멀리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나무가 많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곳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면 정말로 내가 실제의 나보다 한 뼘쯤 더 커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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