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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ug 22. 2021

7개월 차 식물 집사의 나날

*비전문가 주의 *과몰입 주의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식물 집사가 되었다. 무언가를 섬세하게 돌보는 취미 같은 건 재미도 없고 잘할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시작은 플랜테리어(Plant +Interior)였다. 코로나로 심심해진 나는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며 본격적으로 인테리어의 세계에 입문했다.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에 꽂혔다. 브루클린 스타일 같기도 하고, 스톡홀름 스타일 같기도 한 (잘 모른다) 원목 가구, 라탄 바구니, 그리고 집안 곳곳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수많은 화분들!


처음엔 식물이 주는 '힙'한 바이브만 취하려던 가벼운 마음이었다. 화원계의 이케아라고 불린다는 파주 조인폴리아에 방문했고, 싼 가격에 혹해 식물을 잔뜩 들였다. 그날부터 매일 식물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의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햇살맛집의 몬스테라


식물을 키우기 전, 식물은 나에게 감정의 영역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 생각했을 때는 동물이 주는 위안이나 행복, 귀여움을 원했다. 반면 식물을 들일 때는 그저 집에 새 오브제를 두듯, 가구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데려왔다. 식물을 키우며 재미를 느낀다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매일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있는데 무슨 재미가 느껴질까?


막상 키워보니 보인다. 매일 가만히 있는 줄 알았던 식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잎을 오므렸다가 펼친다. 아침까지 피어있지 않던 꽃이 오후에 만개해 온 집 안을 달큰한 향기로 채운다. 이파리들 사이로 어느 날 갑자기 연두색 새 잎이 빼꼼 솟아오르면 짜릿하다. 옛날 어른들이 그저 잘 먹고 잘 크는 게 효도라고 했던 말을 실감하게 된다. 식물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게 신기하게도 내게 힘이 된다.




처음 식물을 키우며 가장 어려웠던 말은 <겉 흙이 마르면 흠뻑 물 주기>였다. 대부분의 식물 물 주는 법을 찾아보면 늘 저렇게 쓰여있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냥 며칠에 한 번, 몇 주에 한 번이라고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몇 달 키워보니 집의 습도에 따라, 그리고 식물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물 주는 주기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식물은 잎이 축 쳐지는 걸로 의사 표현을 한다. 그런 식물들은 황급히 물을 주면 실시간으로 생기를 되찾는다. 어떤 식물은 아무 티도 내지 않다가 조용히 죽어버린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많은 식물을 보냈고, 거의 죽을 뻔했던 식물들을 간신히 살리기도 했다. 할미꽃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굽어있던 라밴더 줄기가, 지금은 모두 하늘을 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씩씩하게 자란다. 


지금 집에 남아있는 8개의 화분들과는 우리만의 리듬이 생겼다. 표정도 말도 없는 이 생물에게 지금 뭐가 필요한지, 매일 잎과 흙을 만져보며 조금은 알게 되었다.




최근 몇 개의 식물 분갈이를 해줬다. 원래 있던 화분이 작아져서 더 큰 화분으로 이사를 시켜 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몸살을 앓고 죽는 식물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분갈이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늘 효자 노릇을 하던 몬스테라의 잎 몇 개가 힘 없이 흐물흐물해졌다. 통풍이 잘 되는 명당자리에 두고, 과습인가 싶어서 늘 해주던 분무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요주의 시간을 보내며 몬스테라가 조금씩 회복해 갈 때쯤, 새 잎이 나왔다. 막 움트기 시작한 작고 말려있는 그 연두색 잎을 보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인간도 식물도 마음이 놓여야 2세를 생각하지 않을까 싶고(?), 그런 의미에서 새 잎은 이사를 잘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을 한 몬스테라는 오늘도 쑥쑥 자라고 있다.


집사 생활에 꽤나 과물입을 하는 나날은 보내고 있는 터라 가끔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길목에 있는 스파트 잎을 무심코 툭 치고 가면 그렇게 애가 탈 때가 없다. 원래 다 흔들리며 피는 거라지만, 이 존재들에게 어떤 악의의 몸짓도 닿지 않았으면 하는 과잉보호하는 부모의 마음이 든다. 말은 못 알아들을 테지만 그래도 기운은 알지 않을까. 오냐오냐 키우고 싶다, 좋은 것만 주면서.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내가 집에서 식물들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이런 정적인 취미를 가질 기회가 있었을까? 식물을 키우는 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뭐든 단정 짓지 않기로 한다. 언제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좋아질지 모른다.


점점 취미 부자가 되어간다. 문을 활짝 열고 가볍게 흔들리는 식물들을 보며 또 다른 재밌는 일들이 불어오기를 기대해본다. 



(+ 5월에 쓴 글이다. 그사이 우리 집 식물들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새 보금자리로 이사했던 몬스테라는 이제 물꽂이로 번식시키고 있다. 물 속에서 뿌리들이 쑥쑥 잘 자라서 곧 화분에 심어 줄 예정이다. 새 친구 하트호야도 들어왔다. 한편 워터코인은 진딧물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조만간 바질을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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