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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ug 06. 2023

두 개의 휴대폰 두 개의 세계

나에겐 두 개의 휴대폰이 있다.  하나는 회사에서 지급받은 업무용 휴대폰, 다른 하나는 개인 휴대폰.


물건 잃어버리기 대장이자 핸드폰 충전 안 하기 대장을 겸직 중인 나답지 않게 두 개의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어디든 빼먹지 않고 들고 다닌다. 그렇게 산 지도 어느덧 2년.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아는 건 가족과 친한 친구를 합쳐 스무 명 남짓이다. 연예인도 아니고 웬 유난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의식적으로 일과 삶을 나눈 것의 만족도는 손목이 좀 아프긴 해도 여전히 높다. (게다가 알뜰 요금제 덕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십 개의 업무 단체 카톡방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메시지들을 보내는 사이 자꾸만 소중한 메시지들이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가 버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마의 밥 먹었냐는 안부 연락이나 친구들이 보내는 예쁜 하늘 사진 같은 거.


업무 연락은 늘 훨씬 급박하고 자극적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관심은 언제나 그쪽으로 먼저 향했다. 당장 해결을 기다리는 수백 개의 업무 연락들 사이에서 끼니나 하늘 같은 건 힘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읽고 넘겨버리거나, 이미 카톡방 저 아래로 내려가 버려서 답을 보내기도 늦어버린 새벽에야 발견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 들여다봐도 그런 다정한 대화들만이 기다리는 휴대폰을 하나 새로 만들기로 한 거다. 업무 연락들을 처리하다 한숨 돌릴 때, 개인 휴대폰을 보면 복닥복닥 귀여운 연락들이 와있다. 그 세계에 웅크리고 앉아 큰 보름달도 보고 귀여운 고양이도 본다. 내가 밥을 잘 먹었는지 잠을 잘 잤는지를 돌아본다. 그렇게 잠시 머물러 쉬다 보면 게임 캐릭터의 HP가 오르듯 조금씩 다시 힘이 채워진다.


‘워라밸’ 보다는 일에서의 성취가 늘 먼저였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라이프가 저 멀리 떠내려가지 않도록 두 개의 휴대폰 속 두 개의 세계를 끌어안고 매일을 살고 있다. 요새는 이 균형이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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