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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ug 13. 2023

<김씨네 편의점>의 종영이 슬프다

representation matters

* 2021년에 쓴 글을 다듬어 발행한다. 새로운 글을 쓸 새도 없이 바쁜 나날.


누군가 내게 인생 드라마를 물으면 빠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 미국 드라마 <길모어 걸스>이다. 서른두 살 젊은 엄마와 열여섯 살 딸이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친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로리와 비슷한 나이에 처음 보기 시작해 그녀의 고등학생 시절, 대학교 시절, 직장인이 되는 것까지 함께 성장하며 지켜봤다.


그러나 인생 작품임에도 흐린 눈으로 외면하고 싶었던 장면들은 있었다. 주인공 로리의 한국계 친구 래인과 래인의 엄마 미세스 킴이 등장하는 부분들이었다. 2000년에  시즌을 시작한 드라마이니 그때는 한국인 캐릭터가 미국 드라마에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오는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반가웠던 것도 잠시, 주인공 로렐라이 모녀와 대조가 되는  모녀의 모습은  나를 어딘가 답답하게 했다.


작품 속에서 미세스 킴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으로 하고, 과도하게 딸을 구속하고,  소리를 지르며, 이상하고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고, 어린 딸에게 의사와 결혼할 것을 강요했다. 물론 보수적인 한국계 가정이라면 그런 엄마도 있을  있다. 그러나 전후 맥락 없이 매번 그런 인물로만 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래인과 미세스 킴을 연기한 배우가 모두 한국계 배우가 아니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아시아 문화가 뒤섞인 인테리어(집에 뜬금없이 있는 거대한 부처상이라든가), 중간중간 나오는 황당한 한국말(물론 이걸 유창하게 구현해 내는 것이  훌륭한 드라마를 담보하진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당사자인 한국인 입장에서는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한국인 이민자 캐릭터를 넣어  캐릭터의 '한국적' 특성을 계속해서 웃음 포인트로 삼지만,  작품에 한국 문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명도 없다는 것만 느낄  있었다.


그럼에도 사실 난 괜찮았다.  작품을 보며 내가 감정이입했던 , 주인공 친구 래인이나 몰상식한 미세스 킴이 아니라 주인공 로렐라이와 로리 길모어였기 때문이다. 미스터 킴은 가끔 등장해 주인공에게 이해할  없는 존재가 되어주면 그만이었다. 나도 같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 사람은 대체  저럴까' 하면 됐다. 미국 드라마와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적 주류 문화이고,  문화를 좋아했던 나는 그렇게 대체로 나와 거리가  백인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을 보며 쉽게 그들에게 감정이입할  있는 능력(?)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아쉬움은 있었다.


캐나다의 국영방송 CBC의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은 그런 의미에서 관심이 갔다. <김씨네 편의점>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미스터&미세스 킴과 그들의 딸, 아들의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친구들 중 한 명이 아니라, 한인 이민 가족 전체가 주인공인 캐나다 가족 시트콤이라니? 한국인 이민자들 말고 다른 캐나다인들도 이 작품을 보는 걸까? 누구보다 캐나다인의 삶에 감정이입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내가, 역의 상황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다.


 작품 역시 <길모어 걸스>처럼 한국인의 '한국적' 특성이 극의 재미 요소로 등장한다. 보수적이고 근면성실한 이민자 부모의 모습이 때론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미스터 킴은 고집불통에 매번 가족들에게  소리를 친다. 그러나 동시에 금방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하는 k-가부장의 모습도 보여준다. 단순히 웃음이나 상황을 위해 그들의 한국적 특성이 과장되어 활용되지는 않는다. 가끔 갸웃했던 순간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이 다루고자 하는 문화에 대한 제작진의 최소한의 성의가 느껴졌다.


그러나 2021년 6월, 이 작품이 시즌 5 끝으로 종영한다는 발표가 나오고, 아들 역할의 배우 시무 리우가 페이스북에 폭로글을 올렸다. 작품 대부분의 제작진이 백인들이었고, 유일한 한국계 제작자인 인스 최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사실상 배제되어 왔으며,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묘사들이 점점 심해졌고 캐릭터는 전형적이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진 측에서는 캐릭터  사실상 유일한 백인 캐릭터 섀넌을 주인공으로 스핀오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세스  역할을 맡은 배우  윤도 트위터를 통해 본인의 입장을 올렸다. 본인을 비롯한 배우들이 현장에서 인종차별적인 묘사들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애써왔으며, 작가진에는 아시아계 여성이 전무하고 특히 한국계가 없어 연기하면서 힘들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작품을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들 배우와 유일한 한국계 제작자,  당사자들이 애써왔던 덕분일 수도 있겠다.


2018 캐나다 스크린 어워즈에서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미스터 킴의 'representation matters' 수상소감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늘 마음에 새기는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9ifO5bDoYM

2018 캐나다 스크린 어워즈(Canadian Screen Awards)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주인공 폴 선형 리의 수상 소감


representations matter because when cummunities and people see themselves reflected up on the screen, it is an inspiring and very powerful moment for them.

it gives them voice. When you give people a voice, other people start listening. And when people start listening, things start to change.

보이는 것(가시화)은 중요하다. 스크린에서 자기와 같은 모습을 (같은 소수자성을 가진, 같은 고민을 하는, 비슷한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자체만으로 무척 힘이 된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내가 감정이입을 캐릭터가 나와 유사성을 가질  받을  있는 위안이 있다. 그리고  반대 상황이 주는 외로움이 있다. 배우들은  가치를 믿고 계속해서 시즌을 이어왔을 것이다. 이번 <김씨네 편의점> 사태를 통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조만간 시즌 5를 슬프게 정주행 할 예정이다. 시즌 3~4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왔던 유일한 한국인 제작자 인스 최가 복귀하여 만든 <김씨네 편의점 >의 마지막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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