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촬영과 장소 헌팅으로 요 며칠은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보다 차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길었다. 계속되는 출장으로 집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머물며 세탁기만 네댓 번을 돌리는 빨래방이 된 지 오래고, 집 안의 식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충해에 시달리느라 볼 때마다 조금씩 시들해지고 있다. 알람 없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느지막이 일어나는 건 꿈같은 일상이 되어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요새는 일이 재미있다.
하루 종일 재밌는 건 당연히 아니고 대체로 찰나이지만 그 찰나는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버틸 동력이 된다. 정확히 어떤 찰나에 무엇이 재미있는가? 답을 찾다 보면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늘 공기가 바뀌는 순간이 떠오른다.
촬영을 하다 보면 가끔 그 공간의 모두가 감정적으로 하나가 되는 때가 있다. 카메라는 돌고 있고 모든 소리는 녹음되고 있는데 예상 못하게 배우의 재치 있는 표정이 튀어나오거나 갑작스럽게 화면 속에 변수가 생긴다. 그럴 때면 현장의 너 나 할 것 없이 행여나 웃음소리가 들어갈까 숨을 죽이고 킬킬대다가 “컷” 소리와 함께 무장해제되듯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순간 즉각적으로 공기가 달라진다.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보고 그게 웃겨 또 웃는다. 그곳에 있는 수십 명이 잠시나마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어떤 장(場) 속에 내가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난다.
그 밖에도 글로 읽었을 때보다 더 멋진 세계가 만들어지는 건 언제든 기분 좋은 일이고, 몇 시간만 자면 또다시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 그날 하루가 무사히 끝난 것에 떠들썩하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좋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저것 다 떠나서 그런 마음들이 소중하고 재미있어 계속 이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일이 재밌다는 생각이 든 건 꽤나 오랜만인 것 같아서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잊지 않으려고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