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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ug 21. 2023

여전히 사랑하는 순간들

5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촬영과 장소 헌팅으로 요 며칠은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보다 차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길었다. 계속되는 출장으로 집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머물며 세탁기만 네댓 번을 돌리는 빨래방이 된 지 오래고, 집 안의 식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충해에 시달리느라 볼 때마다 조금씩 시들해지고 있다. 알람 없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느지막이 일어나는 건 꿈같은 일상이 되어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요새는 일이 재미있다.


하루 종일 재밌는 건 당연히 아니고 대체로 찰나이지만 그 찰나는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버틸 동력이 된다. 정확히 어떤 찰나에 무엇이 재미있는가? 답을 찾다 보면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늘 공기가 바뀌는 순간이 떠오른다.


촬영을 하다 보면 가끔  공간의 모두가 감정적으로 하나가 되는 때가 있다. 카메라는 돌고 있고 모든 소리는 녹음되고 있는데 예상 못하게 배우의 재치 있는 표정이 튀어나오거나 갑작스럽게 화면 속에 변수가 생긴다. 그럴 때면 현장의     없이 행여나 웃음소리가 들어갈까 숨을 죽이고 킬킬대다가 “소리와 함께 무장해제되듯 웃음이 터져 나온다.  순간 즉각적으로 공기가 달라진다.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보고 그게 웃겨  웃는다. 그곳에 있는 수십 명이 잠시나마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어떤 () 속에 내가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난다.


그 밖에도 글로 읽었을 때보다 더 멋진 세계가 만들어지는 건 언제든 기분 좋은 일이고, 몇 시간만 자면 또다시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 그날 하루가 무사히 끝난 것에 떠들썩하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좋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저것  떠나서 그런 마음들이 소중하고 재미있어 계속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일이 재밌다는 생각이   꽤나 오랜만인  같아서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잊지 않으려고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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