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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Aug 27. 2023

여유가 된다면

어쩌면 화장 꿀팁

요새는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눈썹 정리를 받으러 간다. 눈썹이 깔끔하면 대충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고 넘기고 모자를 써도 왠지 당당한 기분이 든다. 물론 냅다 양 눈썹을 밀고 나타나지 않는 한, 내가 눈썹 정리를 했는지 안 했는지 백에 구십구는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딱 그 정도 차이를 위해 매달 삼만사천 원을 지출한다.


내가 가는 곳은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한 화장품 브랜드 매장이다. 이 브랜드에서는 자사의 눈썹 왁싱 키트를 팔며 그걸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 제품으로 눈썹 정리를 해준다. 그 과정에서 각종 제품들을 영업한다. 눈썹 정리하는 동안 더운 여름 지친 피부에 쿨링감을 줄 팩을 올려드릴까요?


눈썹 정리가 끝나면 간단하게 수정 화장을 해주며 또다시 제품들을 영업한다. 다크서클을 자연스럽게 가려주는 컨실러, 모공을 깔끔하게 청소해 주는 팩, 발색이 예쁜 틴트 같은 걸 내 얼굴에 바르며 설명을 해준다. 눈썹의 잔털이 뜯기는 순간부터 내 얼굴은 이미 그녀의 것이었다. 어쩐지 멋쩍어서 그 모든 것들을 살 것처럼 경청하며 듣는다. 그리고 실제로 나도 모르게 예상치 못했던 제품들을 한 개씩 사 오게 된다. 제법 성공적인 마케팅인 셈이다.


영업을 하는 점원은 이것저것 바르고 소개해주며 내가 어느 제품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기민하게 포착해서 나에게 밀 주력 상품을 휙휙 자연스럽게 바꾼다. 모공팩에 흥미를 가지는 것 같으면 여름철 열리는 모공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컨실러를 만지작거리면 눈가 어두운 부분을 밝혀주는 것이 얼굴 전체를 화사해 보이게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입술에 정성스럽게 틴트를 발라주시기에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위 아래 입술을 맞대어 비비며 화장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음마' 동작을 하고 있는데, 점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시간 여유 되시면' 그렇게 '음마' 하지 마시고 입술에 발린 그대로 두고 말리시는 게 좋아요.


시간 여유가 되면? 공기청정기를 파는 홈쇼핑 채널에서 "요즘 아이들 숨 엄청 쉬잖아요" 했다던 아무 말 영업이 떠올랐다. 이 역시도 끊임없이 영업의 말을 하다가 나오는 표현 같은 건가? 아니면 나를 배려한 엄청난 쿠션어 같은 건가?


속으로 '그 정도 시간은 되지요'하고 생각하다 보니... 그런 여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문득 매일의 화장을 복기해 봤다. 요새 내가 바르는 건 비교적 심플하다. 자외선 차단제, 비비크림(다소 유행이 지난 것 같지만, 각종 쿠션 팩트들보다 어쩐지 비비크림이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피부가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립밤과 립스틱. 이 네 가지면 적당히 지친 안색 정도는 가릴 수 있다.


모든 찍어 바름에 필요한 건 단 3분. 그마저도 바쁘면 차에서 대충 하고 만다. 특히 화장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립스틱은 정말 슥! 삭! 음마!로 5초 만에 끝내버린다. 점원이 말한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차례로 바른 붉은색이 자연스럽게 마를 시간 여유 같은 건 실제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음마'는 현대인의 바쁨에서 탄생한 어쩌고 저쩌고였던 것인가? 그러니까 어쩌면 엄청난 통찰이 담긴 조언이던 걸까?


당분간 매일 아침 화장을 할 때마다 떠오를 것 같은 한 마디. 앞으로 그 정도 여유는 가지고, 립스틱을 얇게 찬찬히 펴 바르고 잠시 말릴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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