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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Sep 11. 2023

잠과의 경쟁에서는 질 게 뻔해

잠에 들기 전에는 늘 누워서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모로 누워 아이패드도 같이 옆으로 세우고, 이게 눈 건강에 그렇게 안 좋다던데, 매일 생각만 하면서 다음날도 그렇게 똑같이 봤다. 누워서 뭔가 보다 보면 잠이 솔솔 올 때도 있고, 보고 있는 게 너무 재미있어 밤을 꼴딱 새울 때도 있었다. 어느 편이든 좋았다. 방이 조금씩 밝아지고 새소리가 들리면 새로 시작될 하루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잠을 깨울 만큼 좋은 작품을 봤다는 생각에 왠지 충만해졌다. 하루의 숙면 정도 포기할만했어.


목표에 숫자가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매년 최소 100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려 애쓴다. 목표에 도달하는 타율도 제법 높다. 올해도 7월 중순까지 영화만 67편을 봤으니 이 기세로 가면 가뿐했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작품에 들어온 후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본 영화는 단 두 편. 그마저도 매일 10분 안에 잠이 드는 걸 꾸역꾸역 이어서 봤다. 다음 날이면 어디까지 졸지 않고 본 건지 몰라 10초 앞으로 버튼을 열댓 번씩 누르다가 결국 또 비슷한 자리에서 잠에 들곤 했다. 잠이 올만한 느릿한 예술 영화를 본 것도 아니었고 넷플릭스 1위 하는 대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코미디 영화였는데도 그랬다.


드라마를 만드느라 드라마를 못 보는 현실이 뭐 하루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매일 10분 안에 잠에 드는 나를 보면서 새삼 이 일이 참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꺼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 마음을 내주고 감정을 이입하자면, 일상에는 남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전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는 것 같다 한탄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에겐 드라마보다 한숨의 잠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게 먼저였다. 요새의 내가 누구보다 느끼고 있는 걸.


<바비> 재밌다며? <마스크걸> 재밌다며? <남남> 재밌다며? <오펜하이머> 재밌다며? <무빙> 재밌다며?


재미있는 건 알겠지만, 그리고 그 모든 OTT의 회원이지만, 남아있는 CGV 할인 쿠폰도 있지만, 선뜻 어느 작품도 시작하지 못하는 건 내가 금방 잠들 거라는 걸 알아서. 재미있는 건 좀 더 특별하게 시간을 내어 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런 특별한 시간은 당분간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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