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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Sep 17. 2023

난 슬플 땐 음악을 들어

일주일에 4-5일씩 전국팔도를 떠돌아다니며 촬영 중인 요즘, 매일의 아침 일과는 늘 비슷하다. 5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맞춰둔 알람의 고리를 끊고 일어난다. 깨닫는다. 아 맞다 여기 우리 집 아니지. 어딜 가나 늘 비슷한 오래된 냄새가 나는 지방의 모텔방. 비몽사몽 일어나선 스스로를 믿지 못해 이후로도 5분 간격으로 계속 맞춰져 대기 중인 알람들을 끈다. 그리고 신중히 고른 음악을 튼다. 씻는다. 하루가 시작된다. 얼렁뚱땅 나갈 준비를 마치고 하루치만큼 풀어져있던 가방을 도로 싸서 방을 나선다.


바쁘고 건조한 아침 일정 중 쓸모없는 유일한 행동은 바로 음악을 트는 일이다. 방음도 잘 안 되는 방에서 혹시나 옆방에서 자는 누군가의 잠을 방해할까 봐 노랫말이 겨우 들릴까 말까 한 볼륨으로 어떻게든 뭔가 흘러나오게 두는 건, 그럼에도 이런 게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 나이 7세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늘 혼자 집에 있는 피아노를 열심히 뚱땅거렸다고 한다. 제법 건전한 꼬맹이! 디지털 피아노를 가진 덕분에 낮이고 밤이고 헤드셋을 끼고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들이 귀를 울리는 게 좋았다.


3년 전 처음 맞닥뜨린 전염병의 폭풍 앞에서 계획했던 것들이 좌절되자 친구들과 밴드 합주를 시작했다. 지하 합주실의 방음문을 힘주어 닫고 나면 우리의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여전히 이런저런 스트레스들로 속 시끄러울 때면 이어폰부터 끼고 본다. 음악 안에서 위로받고 음악으로 도망쳐온 역사가 제법 긴 셈이다.


일상과 유리된 과장된 사랑과 원망과 회한과 응원의 선율을 듣고 있으면,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오는 기분이 든다. 그 찰나의 유영이 또다시 현실에 발붙이고 하루를 잘 살아갈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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