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 Oct 01. 2023

인생은 타이밍

우리 아파트는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화요일에만 박스와 종이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 버릴 수 있다. 오직 화요일에만 바다의 물길이 열리듯 주차장의 길이 열리고 박스의 섬이 생긴다. 수요일 오전, 수거 업체가 모든 박스를 싣고 가면 흔적도 없이 박스의 섬은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주차장이 된다.


그리고 그 섬을 못 본 지도 어언 3주째. 베란다에는 미쳐 버리지 못한 박스들이 하나 둘 쌓이고 있다. 출장 일정에는 계속해서 화요일이 끼어 있고, 출장을 다니다 보면 또 사야 할 것들이 그렇게 생각나는 탓이다. 택배는 계속해서 오는데 종이 쓰레기를 버릴 시간은 나지 않는다. 박스가 늘고 있는 베란다에서는 왠지 눅눅한 종이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추석 연휴를 맞아 3일의 휴차가 있었지만, 화요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또 박스를 버릴 수 없었다. 추석 선물로 오히려 또 박스만 늘었다.


3일을 쉬어도, 4일을 쉬어도, 아니 6일을 쉬어도 화요일이 아니면 안 된다니,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든다. 다음 주도, 다다음주도 안될 것 같다. 박스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그때 그 시절 도전 골든벨의 유행어가 떠오른다. 고작 박스를 버리는 쉬운 일을 오직 타이밍 때문에 할 수 없다니!


그러나 어쩌면 많은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그런 허무한 이유로 비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나지 못한 사람들, 잡지 못한 기회들, 하지 못한 말들. 그 모든 게 그저 운때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매주 화요일의 휴무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때 내가 안동에 있다면, 연천에 있다면, 문경에 있다면 그건 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몸과 함께 걷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