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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Nov 19. 2023

아무튼 택시

이 무슨 사치스러운 제목인가 싶지만, 요새는 정말 가지각색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를 설득해 가며 출퇴근길에 택시를 탄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가방이 무거우니까, 이번 달에 어차피 돈 쓸 일도 없었으니까, 지금 버스를 타고 가면 회의에 늦을 테니까(그럼 일찍 출발했으면 됐잖아?).


집에서 회사까지 택시비는 도로 상태와 탑승 시간에 따라 대강 19,000원에서 22,000원 정도가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지 않은 돈을 그렇게 길바닥에 뿌리는 셈이다. 이쯤 되면 차를 사고 매달 할부금을 내는 게 더 경제적인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생판 모르는 남이 운전해 주는 차 안에 그저 앉아만 있어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편안함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보면 예전부터 늘 숨 쉴 틈 없이 바쁠 때면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처럼 택시를 타댔다.


이유는 사실 알고 있다. 오로지 이동만이 목적인 시간의 틈에 숨어 잠깐의 휴식을 즐기는 셈이다. 집에서는 집의 일이, 회사에서는 회사의 일이 있다. 촬영을 끝내고 주말 없이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요즘, 택시 안이 유일하게 딴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 사이에 어떤 방해 요소도 없었으면 좋겠다.


택시 안에서는 제법 알찬 시간을 보낸다. 흘러가는 풍경도 보고, 음악도 듣고, 엄마랑 통화도 하고, 사진첩도 뒤적이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구경한다. 잠깐! 그건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도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오지 않는 버스와, 추운 날씨와, 주위의 소음과, 환승을 신경 써야 하는 것조차 싫을 만큼 어쩌면 연약해져 있는 셈인가. 일상의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최소화하고 싶어 진다.


일을 하느라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생활인의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애써온 세월이 제법 길다. 그러니까 사실은 반성하려고 시작한 . 하지만 내일도 내가 택시를 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분간은 그럴만한 시간이라고 또 스스로를 설득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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