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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Dec 03. 2023

본방 사수의 감각

준비 중인 작품의 방송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시청률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될지 도저히 감이 안 오는 나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갈아 넣어 만들고 있는 작품이니 당연히 만족할만한 시청률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만족의 기준이 점점 낮아지는 건 TV 드라마의 한계이겠지만 그건 논외로 하고.


문득 거실에 앉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방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와 소파에 날듯이 착지했을 때 소파 가죽에 살이 닿던 감각, 광고가 나올 때면 두근대던 마음, 화장실도 미리 다녀오고 열려 있던 창문도 닫고 딴에 집중을 방해할만한 모든 요소들은 최선을 다해 제거하던 어린 열정 같은 것.


정작 요즘의 나는 일에 치여 뭔가를 본방으로 본 지가 무척 오래되었다. 게다가 정지 버튼도, 10초 전 버튼도 없는 시청 방식이 이제는 낯설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송이라는 매체가 좋다. 내가 만드는 작품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보게 될 거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하게 조금 비장한 마음이 든다. 한때는 그 사실을 애써 잊으려고 했었다. 프로는 마지막 종합 편집을 끝내고 나면 이제 내 손을 떠난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법. 부담감을 쿨한 척 감추었다.


그런데 요새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다들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화면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지. 아무도 보지 않는 북적이는 식당 어느 한편에서 홀로 반짝이는 텔레비전도, 그저 거실의 적막을 깨기 위해 아무렇게나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도, 그리고 누군가 어린 날의 나처럼 동생과 나란히 앉아 두근대며 쳐다보고 있을 텔레비전도 모두모두 떠올리면 애틋해진다. 숫자만으로는 영영 알 수 없는 그 풍경들 표정들을 계속 상상하고 싶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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