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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Dec 10. 2023

내일도 모레도 있다!

오늘만 사는 사람의 독서 후기

친구 둘과 느슨한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이틀에 한 번 아무 책이든 한 챕터 이상 읽으면 된다. 이왕 읽는 거 그동안 쌓아만 뒀던 연출 이론서나 작법책 같은 걸 읽기로 결심하고 제법 잘 실천 중이다.


이 모임을 지탱하는 건 역시나 벌금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책을 읽지 못하면 두 명의 친구에게 양심껏 만 원씩 송금하면 된다. 한 시간 늦는 건 슬쩍 봐주고, 아프면 멋대로 병가 결재(?)를 올리는 허접한 모임이지만 만족도는 높다. 덕분에 올해 작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일만 하며 살다가 하루 1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게 어떤 기분이냐면... 매일 새로운 문제들이 나를 맞이하는 런칭 시즌, 요즘 내 모토는 ‘오늘만 살자’인데, 퇴근하고 밤에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다 보면 오늘 말고 내일도 모레도 존재할 거라는 게 실감이 나는 거다. 지금의 독서는 그때를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도 모레도 있다! 간과하기 쉬운 그 감각을 일깨우는 것은 내게 꽤 힘이 된다.


건강 악화의 계절 12월을 기념하여(?) 요즘 다시 상담을 받고 있는데, 마침 비슷한 결의 질문을 받았다. 70대가 된 나를 상상했을 때 어떤 장면이 떠오르냐는 거였다. 바로 뭔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다 “근데 그때까지 살아 있겠죠?” 하고 얘기하자마자 선생님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대답을 하는 직종은 딱 정해져 있다고, 광고업계 사람들이랑 방송업계 사람들이라는 거였다. 늘 오늘만 보고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사람들에게 70대의 풍경 같은 건 영영 닿지 못할 까마득한 점으로 느껴지나 보다.


먼 미래 같은 건 언제나 관심사에서 쉽게 멀어지는 터라 친구들한테 혼나면서 아직 연금 저축도 안 들었는데 -금융 문맹 죄송합니다- 매일 조금씩 책을 읽다 보면 미래를 위해 적금을 붓는 기분이다. 지금의 이 문장들이 언젠가 나에게 복리로 돌아와 어떤 깨달음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새는 한숨의 잠이 아쉬운 날에도 책장을 들춰보다 잠에 든다. 이 주체적인 강제성이 무척 마음에 든다.


70대의 풍경이 여전히 선명히 그려지지는 않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 때의 내 주위에도 여전히 책이, 그리고 함께 책을 읽을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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