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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May 19. 2024

편안함 아름다움

요즘 옷이나 신발을 살 때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는 편안함이다. 특히 일할 때 입을 옷과 신발은, 배에 일부러 힘을 줄 필요 없고, 움직일 때 속옷이 보일 걱정이 없고, 혹시 땀이 나도 얼룩덜룩해지지 않는, 발 뒤꿈치가 까져 아프다든가, 걸음걸이가 불편해지지 않는 걸로 고른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인식할 필요도 없이 가장 편하게 숨 쉬고 걷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였으면 좋겠다. 여전히 예쁜 옷은 좋지만, 불편하고 예쁜 옷은 사양이다.


십 대 후반-이십 대 초반에는 왠지 그런 옷을 입으면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학창 시절에는 와이셔츠와 치마를 몸에 딱 달라붙게 줄인 탓에 불편해서 자주 체하곤 했다. 매번 교무실에서 손을 따면서도 다시 헐렁한 와이셔츠를 입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하이힐과 짧은 치마를 즐겨 입었다. 하이힐을 신으면 척추부터 다리까지 곧게 펴지며 몸이 확 긴장되는데, 그 불편함이 싫지 않았다. 키가 커져서인지 왠지 조금 우쭐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런 옷을 입으면 평소에는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보폭이 크고 점프와 달리기를 좋아하는데, 하이힐을 신거나 딱 붙는 치마를 입으면 온 신경이 옷과 신발로 가서 그렇게 뛰어다닐 수 없었다. 운동화를 신었다면 두 칸씩 턱턱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혹시나 넘어질까 종종걸음으로 걷느라 느려지곤 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 하이힐을 신고 걷다 웅덩이를 만나면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나를 한 팔로 번쩍 들어 넘겨주곤 했다. 운동화를 신었다면 크게 점프해서 건널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때는 왠지 그가 나의 보디가드가 된 것 같아서 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예쁜 옷차림이 주는 불편함과 제약을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다. 로맨스 드라마 속에서도 불편한 하이힐을 신은 여자친구에게 자기 신발을 내어주거나 업어주는 남자친구는 제법 역사가 오래된 클리셰니까.


신기하게도 이제는 그런 불편한 차림새가 주는 부자유를 감수할 의향이 없다. 취향도 달라져서 그때 입던 불편한 옷들이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는다. 입는 사람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만 든다. 누군가를 잡고 걷거나, 누가 웅덩이를 건네주는 것 역시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함께 점프를 하고 싶다.


지난주에는 멧갈라와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멧갈라와 동일 선상에 놓이는 ㅎㅈ의 결혼식) 저마다 화려하고 독특한 패션을 뽐내는 멧갈라의 셀럽들은 거대한 드레스를 입은 채로 어쩐지 옷에 잡아먹힌 듯 보였다. 그들 옆에는 드레스를 잡아주거나 계단 위로 옮겨줄 사람들이 서너 명씩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게 좀 이상해 보였다. 반면 친구의 결혼식에서 신부인 친구는 굽이 낮은 구두에 누군가 잡아주지 않아도 걸을 수 있는 원피스를 입고 직접 식장을 돌며 한 명 한 명 손님들을 맞이했다. 흰 치마의 끝단에 잔디 물이 살짝 들었지만 친구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 두 광경을 보며 다시금 생각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보폭으로 걸음을 걷고 원하는 길로 가고 싶다고. 지금 내 기준의 미감엔 그 편안과 자유가 아름다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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