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 언제나 고마운 사람들을 줄줄 늘어놓는 판에 박힌 수상 소감을 보며 생각했다. 보는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대신 나는 좀 더 쿨해져야지. "감사한 분께는 제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한 마디 하고, 그다음부터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라든가, 우리 산업의 뿌리 깊은 병폐라든가, 그게 뭐가 될지는 몰라도 아무튼 넘겨받은 마이크를 더 의미 있게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어째서 연말 시상식에서 내가 수상 소감을 하리라는 걸 가정하는 건데?' '대체 뭘로 받을 건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지만 아무튼 상상은 즐거우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온다면 대충 그런 멋진 말을 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요 며칠 촬영을 하며 느끼는 건 정말로 그저 감사함뿐이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예산 안에서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자면 결국 그나마 넉넉한 건 마음뿐이다. 그마저도 매번 받기만 한다. 수상 소감을 하는 그네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거르고 거르다 보면 결국 고마운 마음만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이름을 외치는 것이 보는 사람들에게 지루할 거라는 걸 그들이 몰랐겠나? 그저 그 순간에는 그 이름의 주인공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뿐이었을 테다.
한 번 더 신경 쓰고 들여다보고, 자기 일도 아닌데 선뜻 나서서 도와주고, 늘 함께 고민해 주는 이들 덕분에 허전하던 그림이 채워지고 심심할뻔했던 장면에 생기가 생긴다. 1을 계획하고 나간 현장에서 그들 덕분에 10이 되고 100이 된다. 내가 오늘 한 일은 그저 감탄하고 기뻐한 것. 열심히 숨겨보려 하지만 아마도 한껏 티가 날듯한 초심자의 어설픔을 기꺼이 견뎌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정말이지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남은 계절은 그 사람들로 충만할 예정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열릴 나만의 연말 시상식에서 목 터져라 외치리라는 예감이 드는 이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