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에 대한 고찰: 굳이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누구나 흑역사 한 개쯤은 만들지 않나? 초년생의 나는 취미처럼 만들며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따라잡으려야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을 따라잡고 싶어서, 능숙해 보이고 싶어서, 무시당하기 싫어서, 이유는 다양했다. 당시 내가 생각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대체로는 자충수) 역시 다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굳이?'라는 말에 꽂혔었던 것이다.
아마 그때 같이 일했던 선배의 말버릇 중 하나였을 거다. 열심히 고민해서 낸 의견이 그런 반응을 들었을 땐, 일단 기부터 죽었다. 그리곤 이내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 내가 쓸데없는 것까지 너무 신경 썼나 보다. 선배는 큰 판을 볼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나는 지엽적인 것에 꽂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 말 한마디로 프로페셔널함을 얻을 수 있어 보였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면 괜히 그 표현을 따라 쓰기 시작했다.
마법의 단어처럼 느껴졌다. 네가 얘기하는 거 나도 다 생각하고 다 고민해본 건데 그거 필요 없어,를 딱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나의 통찰력이 어필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상했다. 일을 하며 지켜본 놀라운 순간들은 대체로 그 '굳이'에서 시작됐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거 한 번 더 고민하고, 한 번 더 들어보고, 한 번 더 생각할 때 나오는 디테일의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때론 사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체에 그 사소함이 더해지는 순간 판도가 바뀌곤 했다.
어찌 보면 대부분의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다 그 '굳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누군가의 사연을 그렇게까지 오래 보고 들어야 하는 이유를 캐릭터로, 서사로, 스펙터클로 만들어가는 거다.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걸 그렇게까지 할 때 사랑이, 우정이, 의리가, 그 밖의 모든 좋은 감정들이 피어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간 받아온 마음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긴긴 주말을 보내며 또 한 번 다짐한다. 굳이 마음 쓰고, 굳이 고민하고, 굳이 바라보는 사람이고 싶다. 그 '굳이'들을 그러모아가며 조금 더 섬세한 마음을 갖고 싶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도.
'굳이'를 평생 금지어로 삼고 한 번 쓸 때마다 가상의 쟁반이 머리 위로 쨍 하고 떨어져 내려와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싱거운 상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