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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Sep 05. 2021

결의라곤 없는 마음가짐으로

게으름뱅이가 말하는 꾸준함의 비결

지난 2월부터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하루 24시간 중 16시간 이상 단식을 하면 된다. 보통 저녁 6-7시쯤 마지막 끼니를 마치고 나서 간헐적 단식 앱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르면 타이머가 작동되고 그때부터 어플에서 조금씩 원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단식을 하는 동안은 물이나 차만 마신다. 꽉 찬 원이 되면 16시간이 끝난 것이다. 어플에선 15시간이 지나면 한 시간 남았으니 조금만 힘을 내라는 알림이 오고, 16시간이 되면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며 음식 섭취를 허락해준다.



6개월 간 꽤 꾸준히 이 습관을 유지 중이다.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천천히 2-3kg가 빠졌다. 최대한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불쾌한 배부름 없이 편히 잠들 수 있다. 늦은 밤에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음날의 과식을 각오하지만, 의외로 첫끼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른다. 의사마다 말이 다르고, 체질상 안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좋은 식습관이라는 판단이 든다. 은은하게 날 괴롭히던 식도염도 조금 나아졌다.



이 꾸준함의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완벽하길 포기했다는 데 있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랑 살아본 결과 알게 되었다. 나는 게으르다. 꾸준히 한 길을 파는 사람도 아니다. 계획을 하는 걸 좋아하지만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다.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늘 그 계획으로 소설을 쓰기 때문이다. 계획이라기보단 사실 망상이다. 그 속에서 나는 미라클 모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글을 쓰고 30분 이상 책을 읽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저녁엔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부지런한 인간이다. 그 밖에도 내가 세 명은 더 와야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을 다량 계획한다. 그리고 안 지킨다. 사실 안 지켜도 별 타격이 없다.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그래서 진짜 습관으로 가져가고 싶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주 쓰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돈 걸기, 혹은 완벽하길 포기하기. 브런치 글은 첫 번째 전략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쓰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마감을 정하고 어기면 벌금을 내기로 했다. 정해진 마감 시간+30분을 어기면 즉시 송금을 해야 한다. 벌금의 힘은 강력하다. 지쳐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날에도 어떻게든 책상에 앉게 된다. 그리고 책상에 앉으면 결국 뭔가 써지긴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전략은, 게으른 완벽주의자 상태(혹은 핑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큰 맘을 먹고 세운 계획들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는 대부분 며칠은 꾸준히 하다가 중간에 모종의 이유가 생겨 하루 실패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의욕이 급속도로 사라져 결국 금세 다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



‘대체로 지켜보자! 안될 수도 있지!’ 같은 결의라곤 없는 마음가짐이 그럴 때 도움이 된다. 한 달을 꽉 채워 간헐적 단식을 성공한 적은 없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는 며칠씩 기록이 뻥 뚫려 있기도 하다. 약속이 있거나 배고파 죽을 것 같을 때는 애써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평소 같았으면 못 지키고 나서 접을만한 시점에도 그냥 다시 했다.



세어보니 160일 중 24일을 금식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다시 지켜낸 136일, 85%의 날들이 있어서 이 습관은 현재 진행형이다.


셀프 칭찬에 후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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