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권태기를 겪고 있다. 친구들과 약속한 마감 시간도 매번 슬그머니 늦는다. 미루고 미루다가 열두 시쯤 책상에 앉아서는 의식의 흐름대로 겨우 뭐라도 써서 털어낸지도 몇 주가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글을 쓰고 나서 후련하지 않다는 거였다. 글에 투입하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니 매번 얕은 글을 써서 냅다 던지듯 발행 버튼을 누르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 쓰고 나서 한동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과연 이런 글쓰기도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내팽개쳐둔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 쓸 때는 아쉬움뿐이었던 글에도 적어도 딱 한 문장씩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투박하고 손질 덜 된 문장들 사이에 기특하게 빼꼼 나온 문장. 아무것도 안 쓰고 넘어갔다면 그냥 잊힌 채 사라졌을 단어. 쳐다보기 싫은 백 문장 사이에 있는 그 단 한 문장 덕분에 그래도 계속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자칭 밴드맨으로서 여전히 간헐적으로 합주도 한다. 연습을 많이 안 하니 별로 듣기 좋은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몇 달 만에 기타를 잡으면 처음처럼 손가락 끝이 까진다. 그럼에도 그냥 다시 한다. 하다 보면 내가 이런 어려운 코드도 잡는다고? 하는 순간이 가끔 온다. 오늘도 친구들과 엉망진창으로 한 곡을 끝냈다. 결과는 처참. 빠르게 코드를 바꿔야 할 때면 어김없이 기타가 빽빽 괴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덕분에 오늘도 난생처음 잡아보는 코드들을 잡고 새로운 음을 내봤다. 그 새로움이 재미있다.
역시 중요한 건 꺾였지만 그냥 하는 마음인가. 합주도 하고 글도 쓰고 얼렁뚱땅 한 주를 잘 마무리한 걸 자축하는 일요일. 오늘은 심각할 것 없는 코미디 영화를 한 편 보고 잠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