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로 소비하는 문화
셔츠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린넨으로 만든 간단한 튜닉 형태에서 시작해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들의 속옷으로, 산업혁명 이후에는 중산층의 상징으로 변모해 왔다. 실용주의의 나라 미국에선 작업복으로 변했다. 한때 계층을 일컫는 화이트칼라, 블루칼라도 셔츠의 그 칼라에서 나왔다. 그 긴 여정 속에서도 살아남은 셔츠는 오늘날엔 수많은 디자이너가 전통적 형태를 해체하고 재해석하여 다양한 실루엣과 디자인, 소재로 자기 표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셔츠는 화려하고 다양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클래식한 형태는 여전히 경조사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다양해진 만큼이나 셔츠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서 시작하여 수십만 원 혹은 그 이상까지.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경조사에서 마주친 누군가의 셔츠가 어떤 가격대인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단정하게 잘 다림질 된 흰 셔츠만으로도 예의가 되기 때문이다. 소비의 액수보다 의도가 더 중요한 경우 중 하나다. 결혼식에서 흰 셔츠는 순수함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응원을, 장례식에서는 흰 셔츠에 검은 정장으로 애도와 존경을 표현한다. 셔츠의 칼라는 목을 감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추는 몸을 정돈된 선으로 정리한다. 이런 구조적 특성도 경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셔츠를 입은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정돈하게 해준다.
현대 사회에서는 티셔츠가 일상을 지배하지만, 셔츠는 여전히 티셔츠와는 다른 포지션을 갖고 있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OTT를 볼 때는 티셔츠를, 중요한 자리에서는 셔츠를 찾는 이 구분은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이제 나는 셔츠를 그저 '입는' 것이 아니라 '즐긴다'. 꼭 격식을 갖춘 정장 안에 입는 것이 아니라 캐쥬얼 한 차림에도 셔츠를 입는다. 셔츠를 입고 걸을 때면 내 걸음걸이는 좀 더 경쾌해지고, 어깨가 자연스레 더 펴진다. 셔츠는 그런 옷이다. 나를 다른 버전의 나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천 조각.
복장에 대한 경계가 계속해서 흐려지는 요즘, 셔츠를 대신해 깔끔한 니트나 티셔츠가 자리하는 경우도 많다. 꼭 불편한 옷을 입어야 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특별한 날에는 셔츠를 찾는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셔츠까지 갖추었을 때 주는 그 '특별함'을 입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단순히 셔츠를 사서 입은 것이 아니라 참여의 표현이다. "나는 당신의 특별한 날에 함께하기 위해 이 불편한 옷을 입었습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소비는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셔츠를 통해 예의를 소비하고, 전통을 소비하고, 때로는 우리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셔츠라는 평범한 옷을 특별한 문화의 일부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