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야식'을 소비하는 시간

by 메모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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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남편과 보내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퇴근 후에 외식하던 재미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었고, 온전히 둘만 보낸 주말은 힘을 합쳐 아이를 돌보는 날로 변했다. 우리가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든 밤에 주어졌다.

아기가 잠들고 집안이 조용해지면, 부엌에 불이 다시 켜진다. 나는 라면을 꺼내 냄비에 물을 올리고, 남편은 그릇을 두 개 꺼낸다. 내가 라면 봉지를 뜯어 끓는 물에 면과 수프를 넣고 계란을 풀 타이밍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접시에 덜고, 식탁에 수저 두 벌을 가지런히 둔다. 어제 먹다 남은 콜라를 컵에 담아 수저 곁에 올려두고, 그사이 완성된 라면을 식탁으로 옮긴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아기의 잠을 방해할까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서로 오고 가는 말은 없지만, 라면이 식탁 위로 올라가는 순간까지 척척 합이 맞는다. 풀어진 계란이 몽글몽글 맺혀있는 국물 한 모금에 줄임표처럼 걸려 있던 말들이 쏟아진다. “오늘은 유난히 안 자려고 하더라.”,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지?”, “고생했어.” 오고 가는 말은 국물처럼 따뜻하고, 온몸 구석구석 배어있는 고단함은 그 따뜻함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속삭이듯 말하고 소리 죽여 웃는 시간. 우리는 야식을 먹으며 서로의 마음을 읽어간다. 우리에게는 매일 야식이 필요하다. 야식이라는 이름의, 짧지만, 충분한 위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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