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으로 소비하는 책
고등학교 2학년 무렵,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점심시간마다 새로운 책을 고르는 일이 그 시절 내게는 유일한 흥미이자 이벤트였다. 어디를 가든 책을 들고 다녔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문학소녀'라 불렀다. 장난이 더 많이 섞인 우스갯소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독서는 내게 순수한 즐거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책 읽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나름의 자부심과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고등학생 수준에서 독서라는 것은 음악감상보다는 고차원적인 취미 같았으니까. 대학에 가서도 도서관을 찾는 일은 여전히 재미였지만, 그 재미에는 나에 대한 이미지를 부수적으로 덧입히는 만족감도 있었다. 좋아하는 오빠가 '너는 책을 많이 읽네'하며 말을 걸어주었을 때는, 독서가 마치 '나'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에 따라오는 '책 읽는 사람'의 이미지가 내 독서 생활에 큰 동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전문 서적과 두꺼운 이론서를 반복해서 읽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매일 책과 씨름했고, 그 속에서 독서는 더 이상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이론서에 밀려 재미로 읽던 책과도 점점 멀어졌다. 독서가 특별하지 않은 세상에서, 굳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었다고 해야하나. 취직하고서는 책도, 도서관도 영영 떠나보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된 나에게 누군가 취미가 무엇이냐 물을 때마다 나는 '독서'라고 답했다. 책과 멀어졌지만, 그 '고차원적인 취미'를 나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 '요즘 재밌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 물으면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나는 늘 내가 독서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독서와 멀어졌지만, 시간이 나면 서점에 들러서 책을 샀다. 읽는 건 나중 문제고,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두어 장 훑어보고 일단 사서 책장에 꽂았다. 읽진 않았으나 언젠가 읽을 것이라는 합리화로 책장에 책을 채웠다. 늘어가는 책을 바라보면서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 세계와 이별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꾸준히 돈을 들여 책을 사 꽂았다. 어릴 적, 책을 사고 싶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지갑을 열어주던 아빠를 떠올리면서, 책을 살 때만큼은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돈을 썼다.
휴일 아침, 소파에 누워 알라딘 앱을 연다. 메인 화면에 뜨는 '편집장의 선택'을 눌러 몇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독서를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이번에도 읽는 대신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