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실로 소비하는 산책
야근은 아니지만 평소보다 늦어진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저녁을 먹기엔 애매하고 운동을 하자니 배고픈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늦게 먹으면 괜히 살만 찌니 운동 삼아 가볍게 산책하며 저녁을 건너뛰기도 한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조금 움직이는 편이 허기를 잊기에도 좋다. 와이프와 함께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걷는 즐거움도 있다.
그런데 가끔, 타이밍이 좋게(?) 아파트 단지에 혹은 인근 공원 근처에 작은 야시장과 만날 때가 있다.
위험하다.
들어서면 안 되는 그 길 위엔 기름 냄새와 음악 소리가 깔려 있다. 푸드트럭에서 튀겨지는 치킨, 바람에 섞여 오는 닭꼬치 냄새, 그리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 지난 노래들. 운동은 명분이고, 허기를 달랠 목적이었는데, 도리어 걸음을 옮길수록 허기가 깨어나 마음을 흔든다. 더구나 짧은 봄이나 가을에만 누릴 수 있는 이 시즌 한정 이벤트 아닌가. 그냥 지나치는 건 너무 각박하다는 와이프의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운을 띄워본다.
“잠깐 구경만 하자.”
항상 그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손엔 늘 포장봉투가 들려 있다. 닭꼬치, 야채 곱창, 츄러스. ‘걸었으니까 괜찮다’는 빈약한 합리화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산책은 끝났고, 어쩌다 보니 산책은 허울 좋은 핑계가 되었지만 기분은 좋다.
내일도 산책을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