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이어진 노래

이달의 소비

by 메모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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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의 데이트 묘미는 평일 저녁에 있다. 회사에서 다 지쳐버린 심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옮기는 발걸음과, 약속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두근거리는 그 마음이 은근히 활기를 돋는달까. 평일 저녁 데이트라면 코스가 뻔하다. 저녁 먹고 카페에 잠깐 들르거나, 날씨가 좋은 날에는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좀 하는 것. 다음날 출근을 위해 무리할 순 없고, 같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 손을 잡고 느긋느긋 걷는 것. 불타오르는 사랑을 어찌하지 못하는 서투름도, 너무 익숙해져 느끼는 권태로움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지점, 그것이 다 큰 어른들이 즐기는 퇴근 후의 뻔한 데이트랄까.


지금이야 블루투스 이어폰이 기본값인 시대지만, 내가 남편과 연애할 때만 해도 블루투스 이어폰은 신문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콩나물 대가리 같은 블루투스 이어폰의 디자인을 운운하며 호불호가 갈렸고, 이어폰에 굳이 큰돈을 써야 하나 의문을 가지던 때였으니. 더군다나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나 같은 사람에게 블루투스 이어폰이란 먼 나라 얘기였다. 나와 비슷한 남편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퇴근 후에 만나 저녁을 먹고 한강을 걸었다. 직장인의 뻔한 데이트 코스였다. 꽤 걸었다 싶으면 보이는 아무 벤치에나 앉아서 유선 이어폰을 연결해 노래를 들었다. 나는 왼쪽, 남편은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토이, 김동률, 가을방학의 노래를 들었다. 나눠 낀 이어폰이 빠질까 우리는 달싹 붙어 앉았다. 양쪽을 연결한 이어폰의 줄이 팽팽해지지 않도록 우리는 어깨를 붙여 손을 잡았고, 줄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얼마 전, 퇴근 후에 남편과 데이트를 나갔다. 연인이 아닌 부부에게 퇴근 후 저녁 시간이라는 것은 달콤한 것만을 골라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므로, 부부가 된 후 평일 저녁 데이트란 특별한 이벤트 쪽에 속했다. 오랜만에 밖에서 저녁을 먹고 근처 산책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평일에 부리는 사치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가방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꽂았다. 걸음을 멈추고 앉을 필요는 없었다. 한 쪽씩 나눠 끼고 팔을 저어 휘휘 걸으며 우리는 여전히 토이와 김동률, 가을방학의 노래를 들었다. 괜한 움직임에 상대 이어폰이 빠지면 어쩌나 하는 긴장감은 연인에서 부부가 된 편안함만큼 풀어졌다. 걷다 마주한 자전거에 우리는 양쪽으로 떨어져 길을 내주었다. 선 없이도 연결된 이어폰에서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자전거가 지나가고 남편과 다시 붙어 서면서, 문득 유선 이어폰이 그리웠다. 둘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던 그 이어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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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서랍 깊숙이 넣어둔 유선 이어폰을 찾았다. 핸드폰에 연결하려고 보니, 더 이상 연결할 수 없는 8핀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쓰는 동안 이제 더 이상 못 쓰는 이어폰이 된 줄도 몰랐다. 누렇게 변한 줄이 괜히 짠하다. C타입 유선 이어폰을 검색하다가, 산다고 얼마나 쓰겠어, 구매하기를 누르려는 마음이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남편에게 물어나 볼까. 이제는 더 이상 쓸모없는 8핀 이어폰을 들고 거실로 나가서 말을 건넨다.


이번 주말에, 한강으로 산책이나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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