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시작'되는 이유
기분이 울적하고 마음이 허할 땐 쇼핑을 했다. 새로운 물건을 보고 예쁜 것을 골라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는 내 본새를 좀 있어 보이게 하는 듯했다. 쇼핑할 때만큼은 모든 주도권이 나에게 있었다. 물건을 예쁘다고 판단하는 것도, 살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도 나였다. 집에서, 회사에서, 인간관계에서 유난히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사러 갔다. 어떤 날은 예쁘기만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샀고, 어떤 날은 언젠가 쓸모가 있겠거니 하는 물건을 샀다. 쓰임새가 분명한 것은 별로 없었다. 내 기분이 허락한 물건들이 방 안에 하나둘 늘어갔다. 주도권을 장악하고 기분이 좀 나아지나 싶은 건 계산을 할 때까지만이었다. 나에게 쇼핑은 진열된 것 중 살만한 것을 고르고 값을 지불하는 행위까지만 의미가 있었다. 계산하고 나오면 방금까지 누리던 권력은 눈 녹듯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값이 매겨진 물건만이 손에 들려있을 뿐이었다. 그 잠깐의 주도권을 위해 어떤 날은 삼십만 원을, 어떤 날은 만 오천 원을 썼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가격만큼의 허망함을 느꼈다.
계절 옷을 정리하며 택도 떼지 않은 옷을 세 벌째 발견한 날, 나는 내 소비생활과 대면했다. 문제인 줄 알았지만, 요리조리 피하며 못 본 척 외면하고 지낸 날들이 이미 길었다.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돈을 벌면서 내 감정을 위한 데에 자주 돈을 썼다. 가치 있는 소비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 기분을 위해 썼으니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닌가? 반문하기도 했지만, 택도 떼지 않은 세 벌의 옷은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건 낭비벽이야. 시간이나 재물 따위를 헛되이 헤프게 쓰는 버릇. 나는 그동안 얼마나 헛되이, 헤프게 돈을 써왔는지 떠올렸다. 입지 않은 옷이, 쓰지 않은 노트가, 읽지 않은 책이, 바르지 않은 립스틱이 방안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었다. 버릇이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가. 몸에 익어버린 것을 고치기 위해 써야 할 노력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았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니 마음에 착잡함이 들어찼다.
일과 사람에 치여 유난히 지친 날, 퇴근 후에 쇼핑몰로 차를 몰다가 근처 공원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지막이 내쉬어 보는 한숨. 나를 달랠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성난 감정을 수그러지게 하는 데에 돈 쓰는 일은 얼마나 단순한 방법이었나, 밀려드는 허탈함을 지고 차에서 내려 공원을 걸었다. 걸을수록 쌓여가는 질문, 나는 나에게 이토록 무지했었나. 돈 쓰는 일로 쉽게 가려버린 그동안의 감정은 간단히 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는 종아리가 뻐근해 질때까지 걸었다.
여전히 쇼핑을 대체할 만한 확실한 방법은 찾지 못했다. 돈 쓰는 일처럼 즉각적인 보상으로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내 감정과 마주하는 일에 아직 서툴다고 해야 할까. 택을 떼지 않은 옷과 상자째 놓여있는 립스틱을 보며 쇼핑으로 묻어버린 그날의 기분을 떠올린다.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잔재는 한구석에 씻겨 내려가지 않는 거북함으로 남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카드 명세서는 쇼핑 후에 느낀 허망함의 증표가 되어 나를 괴롭힌다. 기분에 따라 늘어난 물건을 하나씩 찾아 줄지어 세운다. 방향을 잘못 잡은 소유욕이 노여움과 심란함, 언짢음으로 변해 눈앞에 놓여있다. 다 꺼냈나 싶다가도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또 숨어있을 것만 같은 느낌.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감정들은 끝내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집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구나. 떨쳐내지 못해 케케묵은 감정까지 품고 사는 내 처지가 딱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 나는 당분간 기분에 휩쓸려 소비하는 일을 멈춰보기로 한다. 그동안 쇼핑으로 누렸던 주도권을 내 마음으로 옮겨 써보기로. 돈 대신 시간을 지불하고, 물건 대신 내 진솔한 감정을 얻어보기로. 그래서 이제는 돈 말고, 시간을 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