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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 Aug 29. 2024

미디어 속 청춘이 내게 미치는 영향

나의 10대는 이렇게 빛나지 않았다

민희진 걸그룹으로 뉴진스가 막 공개됐을 때, 어텐션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 먹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멤버들이 다 같이 뛰어다니는 장면이나,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의 10대는 저렇게 반짝이는 눈을 가지지 않았고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근교 경기도 출신이다. 시골이라 하기 애매하지만 이름을 대면 부모님은 어디 출신이고 얘는 어느 학교를 나와서 누구와 싸웠고 잘 지냈고 사귀었다가 헤어졌고 누구랑 주로 같이 노는지 한 사람의 일대기를 파악할 수 있는 작은 지역에서 자랐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같은 낭만은 없다. 좁은 만큼 초등학생 때부터 서열을 나눠 카르텔이 결정되는 곳이었다. 


나는 예쁜 외모로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고 유행에 맞춰 꾸밀 줄 아는 아이도 아니었다.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도 아니었다. 키 작고 안경 쓰고 조용히 친구들이랑 떠들며 노는 아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외모로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기 좋은 10대 때 나의 첫인상은 찐따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처럼 일진 놀이나 일진 선망에는 관심 없고 좋아하는 아이돌을 얘기하며 노는 친구들과는 쉽게 스며들 수 있지만,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사회성 없는 찐따로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피하다가 나중에는 착하고 재밌는 아이로 느꼈는지 같은 반 친구로 잘 지내곤 했다.


목동같이 학군 좋은 곳에서 얌전한 친구들끼리 지내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아쉽게도 나의 고향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싸이월드에 사진을 찍어 올릴 때는 예쁜 옷을 입지 않았다. 빌려달라는 명목하에 강탈을 당하기 때문이다. 체육 시간에 피구때도 일부러 선을 밟아 나갔다. 어차피 공은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친구들에게 넘어가고 배구선수 서브 수준으로 공을 세게 던지기 때문이다. 가끔 너무 무서운 언니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는 척했다. 지역에서 유명한 언니가 나의 그런 모습을 눈치채고 앞에서 빤히 바라보며 놀렸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나와 결이 맞는 친구들과 지내면서 위협적인 무리를 피하는 것, 삥을 뜯기지 않는 것, 그게 나의 중학생 시절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 학교를 다녔다. 미성숙한 시기에 4인 1실을 쓰며 24시간 내내 지내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20살이 대학교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해도 힘든데 10대 때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건 지옥의 나날이었다. 나는 알아서 결정하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입시로 힘들지 않았다. 인간관계로 힘들었다. 공용 화장실, 공용 샤워실, 4인 1실 기숙사 속에서 유일하게 숨을 트일 수 있는 공간은 독서실이었다. 독서실 칸막이와 미술실 앞 플라타너스 그늘만이 나를 혼자 있게 해주는 곳이었다. 심지어 기숙사 학교인 만큼 단체 기합은 일상이었으며 군기 문화가 심했다. 남자인 친구들은 나보고 군대를 다녀왔냐고 했을 정도다. 나와 모든 것을 함께 했던 룸메이트는 졸업하면 연락을 다 끊어 버릴 거라고 했다.(최근에 그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여전히 연락한다.)그만큼 우리는 부조리한 환경 속에 갇혀 정신적으로 착취하고 있었다. 




뉴진스에 이어서 영화 빅토리를 보고 지난날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내가 피했던 부류의 아이들이 떠올라 흠칫했지만 점차 그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장면을 보며 나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사랑하며 향유했던 적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뉴진스처럼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나, 밀레니엄 걸즈처럼 땀을 흘리며 쟁취하는 청춘을 가지지 않았다. 


그 대신 잔잔한 행복을 품고 자라왔다. 여름방학 때 친구네 집에서 밤을 새우며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했던 일, 친구가 만들어 준 토스트를 먹으며 디즈니 영화를 봤던 일,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깜짝 생일파티를 해줬던 일, 힘들었던 시기에 나를 안아주던 친구의 위로 등 나의 10대는 결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디어 속 청춘은 나의 결핍을 볼 수 있는 작은 질투 덩어리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오랜 우정, 의리, 열정, 낭만은 뒤로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작은 행복을 품고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의 10대는 이렇게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날의 나를 품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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