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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an 31. 2017

백지탈출

백지白紙의 공포라는 말이 있다. 무엇인가 써야만 하는 사람들이 텅 빈 백지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느끼는 감정이다. 비단 글밥 먹고 사는 이들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뛰어난 문장가라도 한 번쯤은, 자소서를 써본 취준생들은 시도 때도 없이 느껴보았을 백지의 공포.



청소년은 청년과 소년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청년은 푸를 청靑자를 쓴다. 靑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창 무르익는 시기라는 의미다. 청년은 무럭무럭 푸르러지기 위해 소년일 적 씨를 뿌린다. 따라서 소년은 기름진 생을 위해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아야 한다.


물론 현실과 동떨어진 사전적 의미일 뿐이다. 언젠가 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왜 공부하느냐 물었더니 공부 안 하면 좋은 직장에 못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어디서 주워들었느냐 물었더니 공부 안 할 때마다 부모님이 그리 말씀하신단다. 그럼 너의 꿈은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 녀석 말문이 막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본인이 가진 씨앗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터였다. 자기에 대한 백지상태. 그러다 사회에 진출할 때 벼락처럼 스며드는 백지의 공포.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청년은 푸르러질 권리, 설익은 소년은 천진해도 될 권리가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나 지금 청소년들이 딛고 선 땅은 백지白地. 농사가 잘 안되어 거둘 것이 없는 땅.


곳간이 비었으니 먹고 살 걱정에 하얗게 지새는 밤들. 취미와 취향은 취업에 내다 팔고 꿈이 수치로 전락하기에 십상인 이 백지 위에서


씨도 안 마른 소년·소녀들은 ‘보고’ 배운다. 보면 또, 더 잘한다. 욕도 더 찰지게 하고, 비난도 더 모질게 하고, 갑질도 더 치졸하게 하고, 포기도 더 빨리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더 잘한다. 보고 배운 것이 제 삶을 침몰시키는 줄도 모르고. 


인생길에서 공부하는 어른, 질문하는 어른, 다정한 어른, 건전한 비판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어른, 내면의 윤리 법정에 따라 행동하는 어른, 타인을 너머 자신까지 사랑할 줄 아는 어른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싹 수 있는 소년·소녀들은 보고 배울 것이다. 보면 또, 더 잘할 것이다. 그렇게 비옥해진 땅에서 꿈이 발아하는 청년들은 푸르러지지 않을까.


백지의 공포를 탈출해야 우리는 침몰하지 않고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갈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한 편의 삶이 사전적 의미에서 맥락적 의미로, 맥락적 의미에서 관계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도록 다음 문장을 이어보고 싶다. 


나는 어떤 사회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가. 



글쓴이 _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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