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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Mar 28. 2017

[리뷰] 슬프도록 아름다운 '고래의꿈'

기억공간 '고래의 꿈'  전시리뷰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끝나지 않고, 아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그 사소한 이유로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제주에 내려와 우연보다는 필연 가까운 인연으로 기억공간 리본 기억지기 황용운 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참 이지나 서야 용기 내서 기억공간의 문을 열어 볼 수 있었습니다. 몇 번 발걸음을 옮겼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닫혀있던 문을 뒤로하고 돌아서며 안도했는지도 모릅니다. 깊이 가라앉은 마음을 다시 들어 올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기억공간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가 기억납니다.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말로, 글로 어떻게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오는 순간까지 제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의 애끓는 마음과 기억공간을 찾아주신 분들의 수많은 메모들을 읽었습니다. 그 많은 말들이 슬픔이 담긴 한 글자, 한 글자가 아니라 그날, 그 사고가 없었다면 살아있을 사람들의 일기에 남은 행복한 이야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기억공간을 다녀와서 한동안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슬픔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2월부터 시작되는 5차 전시 준비를 함께 하자는 부탁을 받았을 때 돕겠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괜한 약속을 한 것은 아닌가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오래 머물며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느껴질 무게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감쪽애' 회원 열 세분이 직접 만든 삼백 네 마리의 고래 인형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피부로 와 닿지 않던 숫자를 304 마리의 고래로 만나보니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습니다. 304명의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 나갔어야만 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상이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에 참 힘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서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은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안타까운 희생을 기억하고,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는 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과 노력으로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변해왔음을 느낍니다. 그 사이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일이 고작이었지만, 세월호 희생자들과 생존자들, 유족들, 그리고 진실을 위해 노력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글쓴이 -  이유지



손으로 만든 고래 인형 삼백 네 마리를 기억공간에 전시하는 일을 돕는 것이라고 들었을 때, 짐 옮기고 설치하는 것을 보조하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래 인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분들이 만들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삼백 네 마리 고래가 삼백 네 명의 희생자를 상징한다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맞닥뜨린 고래들의 숫자와 양에 압도되었습니다. 그 많은 고래들을 기억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결국 하루 열심히 참여하면 되겠지 하고 떠났던 선흘리 외출은 사흘이 지나 끝났습니다.


기억공간에 처음 도착했던 날은 쌀쌀하고 흐린 날이었습니다. 조금은 축축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감물을 들인 천에 솜을 넣어 만든 고래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세월호 희생자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자 공기가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중 노란 종이배를 왕관처럼 쓴 한 마리 큰 고래는 다른 고래들을 돌보는 아빠 고래 또는 엄마고래로 보였습니다. 배가 기울던 그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전한 곳으로 이끌고 생명을 지켜주는 큰 고래 한 마리가 있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놓여있는 고래의 모습이 너무 듬직하게 보여서 마음 아팠습니다.


공간, 세월호 기억공간 리본을 찾은 분들이 함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따뜻하게 슬퍼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고래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바닷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래들이 무리를 지어 어딘가로 즐겁게 움직이는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그날 함께 했던 분들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큰 고래가 다른 고래들을 이끌고 앞장서 가는 모습을 표현하며 보인 고래 뒷모습을 보며 모두 함께 울컥했습니다. 그래서 슬픔보다 따뜻한 희망을 전하는 것이 어떨지 생각했습니다. 큰 고래가 돌아서서 따라오는 고래들을 둘러보는 모습으로 방향을 바꾸어 줄을 길게 달아 높이 띄웠습니다.


잊지 않고자 기억하고자 찾는 고마운 분들을 맞이할 준비를 그렇게 마쳤습니다. 고래 인형 하나를 입구에서 안고, 공간을 둘러본다면 어떨까 아이디어도 나누었습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고래의 꿈' 전시를 마치며, 그동안 어딘가 깊은 곳에 두었던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꺼낼 수 있었습니다.


글쓴이 - 염지홍


사진촬영 - 정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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