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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Mar 28. 2017

결혼은 돼도 투표는 안돼

[칼럼]


살을 에는 한파가 찾아온 것도 아니었는데 올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올 초 이사한 집이 너무 추워서겠지.


본래 펜션으로 지었지만 어찌어찌한 주인댁 사정에 임대로 돌린 집. 문을 닫고서도 커튼이 펄럭이고 코가 시린 걸 보면 집이 온몸으로 숨을 쉬는 모양이다. 생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은 공간이라 내 삶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살아봐야 드러나는 단점들을 다른 사람들은 척하고 아는 것 같은데, 나는 단열도 안되는 집을 좋다고 구했으니 뭔가를 고르는 솜씨가 여전히 형편없나보다. 집도 사람도 겪어보지 않고는 도통 모르겠으니. 하물며 그게 어디 집과 사람뿐이랴. 직장도 다녀봐야, 과일도 깎아봐야 그 실상과 맛을 알 수 있더라. 좀 더 일찍이 경제적으로 독립했더라면 나는 서른 줄 넘어 방한용 텐트를 침대 위에 치는 불상사를 겪지 않았을까.


아직도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잘해보려고 한 짓이 민폐가 되고, 모질게 한 행동이 외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니, 살수록 더더욱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만 자주 실패하고 종종 성공하는 갈림길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잘못된 판단이 내 삶의 매뉴얼로 조금씩 진화해간다는 것 정도.


창문이 많은 집은 피할 것. 단열 상태는 반드시 확인할 것. 전기세는 세대별로 계량되는지 알아볼 것. 비전과 미션도 모르는 조직엔 몸담지 말 것. 말보다 표정을 믿을 것. 표정보다 행동을 믿을 것. 실수의 궤적으로 만들어지는 각자의 매뉴얼.


지난 2월 국회 관심사 중 하나가 만18세 선거권 참여였다. 그러나 선거연령 하향 조정은 사실상 무산됐다. 같은 달 2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련 법안이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


선거권 하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적 판단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나이고, 입시에 전념해야 할 나이다보니 정치참여는 시기장조라는 것. 이러한 염려가 아주 틀린 건 아니다. 하나의 정답만 요구하는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자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해 본 경험이 부족했을 수 있기 때문.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그렇게 염려스런 만18세인데 교육·근로·납세의 의무를 진다. 심지어 병역법상 입대도 가능하고,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 시험 응시도 가능하다. 민법상 결혼도 할 수 있고, 운전면허 취득도 가능한데 선거권만 만19세?


박근혜 탄핵을 외치며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교복을 입고 연단에 선 그들이 얼마나 날카롭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꿰뚫고 있었는지. 아직 따뜻한 집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나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고 있어 보였다.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삼십대의 불안을 알지 못했다. 나는 아직 불혹의 세계를 모른다. 그 세대의 아픔은 그 세대가 제일 잘 안다. 설사 못미더운 선택을 해도 그건 그 세대의 욕망이다. 보호라는 미명아래 청소년들의 주권을 치맛폭에 가두려하지 말자. 서툰 목소리라 할지라도 그 사회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강령 아닌가. 잡아주는 이가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자전거도 혼자타는 법.


그래도 염려스럽다면 1919년 광장에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유관순의 나이는 만16세라.



글쓴이_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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