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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Mar 28. 2017

[안거리]익산 청년 유성우

 전북 익산에 사는 유성우님을 소개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비영리단체에서 청소년들의 진로와 인성 및 자아존중감 교육 등 다양한 청소년 프로그램과 캠프를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지도사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어디에서 어떻게 소식을 접하셨나요? 그때의 심정은?


제가 청소년단체에 일하면서 투잡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오시기에 항상 티브이를 틀어놓고 일을 하는데 장사하면서 뉴스를 통해 세월호 소식을 듣게 되었죠. 일을 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단순히‘사고가 났구나 금방 사고처리가 되겠지’ 생각했고 뉴스에서도 전원 구출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안심하고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뉴스에 나왔던 내용들 이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드러나고 수습도 전혀 안되고 왜곡된 오보들로 인해 분노하게 되었고 희생당하신 분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움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팽목항에도 가고 싶고 안산에도 가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 삶에 치이다 보니 갈 상황도 되지 못하였고 무엇인가 할 수도 해 줄 수도 없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지냈었죠.


 3주기를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 혹 스스로 세월호 3주기를 어떻게 보내실 계획이신가요?

제가 (사)익산 기윤실 실행위원으로 있는데 지난 1주기, 2주기에도 그 주 토요일에 내려가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하고 팽목항에 계시는 미수습 되신 가족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3주기에 맞춰 4월 8일 토요일에 함께 내려갈 예정이고 4월 16일 3주기에는 그날이 주일인데 저희 교회에서 오전 7시에 팽목항으로 내려가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세월호를 기억하며 잊지 않고 오신 분들과 함께 마음 모아 추모할 예정입니다.


제주 선흘리 기억공간의 만난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작년 9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제주도에 휴가 차 내려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 달 반 동안 살 집도 구해야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는데 마침 돌담마을이란 곳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그곳으로 숙소를 정하고 제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돌담마을을 숙소로 정한 이유는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잊지 말자 0416 문구와 함께 노란 현수막이 걸린 입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 곳을 운영하는 분들은 참 의식 있고 좋은 분들이겠구나’라는 생각에 바로 예약을 하고 지내게 되었죠. 돌담마을에 머무르며 펜션 사장님 부부와 이야기를 하던 중 벨롱장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쉬러 오긴 했어도 마냥 의미 없게 놀다 가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마침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고자 벨롱장에 함께 가서 서명운동에 동참하게 되었고 거기서 기억공간이란 곳을 알게 되었죠.


기억공간에서 처음 그리고 그후

기억공간이란 곳을 아까 말씀드렸듯이 벨롱장에 가서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거기서 만난 좋은 분들과 기억공간을 만든 기억지기 황장군 님을 통해 기억공간이 왜 세워졌고 어떤 일들을 하는지 듣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죠. 제주도라는 먼 곳까지 아무 연고도 없이 자신의 퇴직금까지 다 털어서 기억공간을 만드신 용운 형님을 보면서 참 대단한 분이시고 멋진 분이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어 최저생계비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데 기억지기 용운 형님은 저보다 더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진짜 의미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내고 계심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제주도에 휴가 차 왔지만 이후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에 참석하였고 기억공간도 방문하고 계속해서 좋은 만남과 나눔을 가졌습니다. 제주도에 생활하면서 세월호에 대한 미안함과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고 머물러 있던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고 휴가 복귀 후 제가 있는 자리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세월호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리본 나눔과 스티커, 팔찌 나눔, 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좋은 분들과 기억공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마음만 있지 행동하지 않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저에게 제주도란 곳은 이제 항상 고마운 곳이고 살고 싶은 곳이고 그리운 곳이죠. 제주도도 그렇고 기억공간도 그렇고 제주도에서 만난 분들께 마음에 빚도 있고 제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곳이라 저 희기관에서 일일찻집 할 때 기억공간에서 기억 물품들을 받아 판매하고 기억공간 리플릿 나눔도 하고 부족하지만 후원금을 모아 전달하였고요 지난 1월 20일에 있었던 기억공간 후원의 밤에 3일 휴가를 내서 스태프로 참석해서 부족하지만 마음을 모아 섬겼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으면 꼭 광화문 분향소에 들러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추모하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청년으로써 바라로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3주기 가다 되어 가는 지금 이제야 세월호를 인양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납니다. 진실을 왜곡하면서 감추어야 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그동안 뭐하다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에 인양을 하는 것인지… 이렇게 인양할 수 있는 것을 유가족들과 미 수습된 분들의 가족들 몸과 마음을 아프고 힘들게 하면서까지 질질 끌었는지… 진짜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세월호를 인양해도 이미 증거들을 다 인멸한 상태라고 생각이 드는데 어찌 되었건 하루속히 세월호가 인양되어서 미 수습되신 분들을 수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세월호가 인양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양 후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도록 우리 모두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았음 하고요. 아무런 영문도 이유도 모르고 희생당하신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들에 의식 있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앞장서서 활동했으면 좋겠고 절대 세월호를 잊지 않고 희생당하신 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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