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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May 29. 2017

제주에서 기억하는 4월



언제부터 4월이 아팠을까?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4월은 언제나 생동하는 달이었던 거 같다. 거리에는 예쁜 꽃이 피고 기분좋은 날씨와 한강에서 자전거 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4월.
천혜 환경 아름다운 제주에 있는데도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도 길거리에 보이는 이름모를 야생화도 청보리 물결도 내가 느끼는 제주의 4월은 마냥 아프기만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마지막 날. 내일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에 비행기표 폭등하고 렌트카를 구할 수 없다는 지인의 말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 이후 아무렇지 않은 듯 지하철을 타고 웃고 떠드는 낯선 밝음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감정적 단절로 중첩되어 스물스물 올라온다.
제주 4월이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제주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일까? 제주에 온 목적이 달라서일까? 문득 천혜 자연환경 앞에 물리적 시각으로 만끽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쓰담쓰담 위로해 본다.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에 4.3
그랬던 거 같다. 제주에 4월은 세월호참사 세 번째 봄을 지나며 ‘국가학살’ ‘국가폭력’ 으로 제주4.3을 만나 이어졌고 세화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벨롱장’ 에서 이야기를 꽃피웠다. 서슬퍼렇게 날이 선 아픔을 묵직한 슬픔으로만 기억하면 멀어질까? 제주에 온 목적이 달랐던 사람들에게도 들리는 목소리로 디자인 한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제주의 4월이 ‘우리’ 가 되어야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세 번째 봄은 그렇게 기획 됐다.
‘우리’ 가 되어야 ‘낯선 밝음’ 이 오롯이 ‘밝음’ 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단죄되지 않은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5.18이 지나간 광주나 4.3이 지나간 제주도의 냄새는 다르지만 그 피릿함은 의지를 갖고 가까이 코를 갖다 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누군가 기억공간이 주는 무게감이 있다고 했다. 그 무게감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힘들어서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4.3이 지나간 자리에 자리잡은 4.16의 기억은 밝은 제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힘들 수 있겠으나 있는 그대로 갖고 있는 힘이 있다. 난 그 힘을 믿는다. 오롯이 ‘밝음’ 이 될 수 있는 그 힘 말이다.

얼마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선생님 한겨레 칼럼에서 제주4.3을 이야기 하며 세월호참사를 언급했다.

「세월호가 인양될 때 아무말 없이 며칠을 보냈다. 어떤 상호 비교도 적절하지 않지만 <4.3은 말한다> 를 다시 읽을 수 없는 심정과 비슷했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의 공통적인 독후감은 “자기 인식의 한계에 대해 생각함”, “세월호에 관해 말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함” 이 아닐까. 세월호의 ‘미수습자’와 4.3의 ‘행방불명자’, 세월호는 떠올랐고 4.3은 법의 영역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유족들의 경험과 역사 쓰기는 어떤 차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질문만이 유일한 사실(史實)일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세월호참사에 대한 먹먹한 이야기 끝에 분위기를 갈무리 하기 위해 흐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거니까...” 책속에서 만난 제주4.3과 두 눈으로 목도한 세월호4.16 희생자도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은거였다면 나 또한 ‘사람은 누구나’ 에서 자유로울 수 없건만 지금을 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살고 있는걸까?


글쓴이 - 황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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